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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후쿠시마 꼭 방문해달라”는 日의 ‘교묘한 기술’

“피해지에서 축구와 야구·소프트볼 경기가 개최됩니다…피해지를 꼭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2020년 일본 도쿄올림픽 한국어판 공식 가이드북 내용 일부다. 올림픽 조직위원회 공식 웹사이트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이 자료가 말한 ‘피해지’는 어디일까. 후쿠시마현이다. 8년여 전 대지진 여파로 원자력발전소 내 방사능이 누출된 지역이다.

물론 도쿄올림픽 조직위는 여기가 동일본 대지진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가이드북 7번째 목차 ‘부흥올림픽·패럴림픽’에서 이를 강조한다. “부흥올림픽-패럴림픽은 도쿄올림픽의 원점”이라며 피해지에 희망과 감동을 주는 수단으로 스포츠의 힘을 내세운다. 그러나 ‘피해지는 후쿠시마현’이란 사실을 알려주는 문장은 어디에도 적시하지 않았다. 사정에 어두운 독자는 사상 최악 원전사고가 있었던 후쿠시마와 ‘지진 피해지’를 다른 지역으로 오독할 수 있다. 일본 정부가 내년 올림픽을 ‘부흥’으로 포장하는 대신, 방사능 유출 대명사가 된 ‘후쿠시마’는 어떻게 숨기는지 알 수 있는 아주 작은 단서 가운데 하나다.

일본 측이 한국 등 외국인을 향해 후쿠시마 방문을 간곡히 요청한 이유는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재건의 의지를 세계에 알리고 싶어서다. ‘8년 전 죽음의 땅이었지만 이젠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지구촌에 인증 받고자 함이다.

그래서일까. 요미우리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요즘 일본 정부는 사실상 무인지대였던 후쿠시마에 다시 사람을 살게 하고 있다. 신문에 따르면 지난 4월 피난지시가 해제된 후쿠시마현 오쿠마 정(町)엔 전자상점과 식료품점이 7월부터 영업을 재개하기도 했다. ‘주민 5만명 이하 거주’로 분류한 작은 마을단위까지 생활 인프라가 재건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식이 마냥 반길 일은 아니다. 오쿠마 정 일대 방사능 오염도 때문이다. 우리 기준에서 볼 땐 정상 수준이 아니다. 일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일본 일대 방사능 농도를 측정해 주기적으로 갱신 중인 ‘모두의 데이터’ 사이트에 따르면, 오쿠마 정과 도로로 20㎞도 채 안떨어진 도미오카마치 등 주변 4개 지역 토양에선 올해 kg당 6만9480베크렐(㏃)의 세슘137이 검출됐다. 7만㏃을 넘긴 곳도 있다. 세슘137은 핵분열 시 발생하는 주요 방사성 동위원소다. 또 다른 ‘참사지역’으로 꼽히는 체르노빌 원전서도 확인된 물질이다.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있던 2011년 우리나라의 표층 토양 방사능 농도는 평균 7.51㏃/kg(울진 기준·경북대 연구진)로 나왔다. 수치는 해가 갈수록 낮아졌다. 거칠게 봐도 우리보다 방사능 농도가 1만배 이상 높은 땅에 사람이 살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선 이같은 세슘 농도가 연간 방사능 피폭량인 ‘밀리시버트(mSv)’로 따지면 미량이어서 인체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주장한다. 틀린 건 아니다.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에 따르면 인체의 자연 방사선 피폭량은 연간 3 mSv인데, 이는 세슘137 23만㏃/kg에 해당한다. 앞서 언급한 후쿠시마 오염도를 상회하는 노출 수준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자연 방사선 노출도 많으니 이 정도 인공 방사능(세슘 농도)은 괜찮다’는 건 말이 안된다. 없을수록 좋은 게 방사능이다. 일본 정부의 현행 방재대책이 우려되는 이유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 등에 따르면 현재 후쿠시마엔 연 피폭량 20 mSv미만인 곳까지 주민들을 다시 살 수 있게 정하고 피난민을 귀환시켰다. 체르노빌이라면 강제로 이주해야 하는 수준이다. 귀환 지시가 결정되면 피난 배상금이 끊긴다. 별다른 생계대책 없는 주민은 ‘오염된 땅’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피해지역 주민의 방사선 피폭 등을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방사능에 오염된 이 지역의 물이다. 그린피스 경고가 진행중이지만, 일본 정부는 오염수 방출은 공식 입장이 아니라며 사실상 무시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보공개도 미흡하다. 부흥올림픽·재건올림픽을 꿈꾸는 후쿠시마의 현실이다.

이처럼 치부를 화려하게 포장하는 일본의 기술(記述)행태는 하루이틀이 아니다. 전쟁터에서 굶어죽은 일본 병사 수백만 명을 국가를 위해 희생한 멸사봉공으로 포장한 전력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일본 역사가 요시다 유타카의 연구에 따르면 2차대전 당시 300만이 채 안되는 일본군 전사자 중 180만명이 아사자로 확인됐다. 이를 인용한 임지현 서강대 교수는 저서 ‘기억전쟁’에서 “봄바람에 떨어지는 벚꽃처럼 아름답게 스러져간 가미카제 특공대 등으로 그려진 일본군 전사자의 이미지는 많은 부분이 이데올로기적 효과”라고 했다.

70여년 전과 ‘부흥올림픽’ 운운하는 지금 일본의 행태는 전혀 다르지 않다. 이쯤 되면 그 나라 집권 엘리트의 ‘종특(종족특성)’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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