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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富는 노력의 결과요 가난은 악덕”…조선시대 아홉부자 재테크 열전
해동화식전 이재운 지음 / 안대회 옮김 휴머니스트

“귀와 눈, 입과 코, 팔과 다리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어떤 물건이든 마음으로 흠모하고 여기에 정신을 쏟아부을 수 밖에 없다. 이야말로 하늘의 이치로 볼 때 당연하고 인간의 욕망으로 볼 때 팽개쳐둘 수 없는 일이다.”

요즘으로 치면 당연한 얘기지만 ‘안빈낙도’가 선비의 미덕으로 추앙받는 영·정조 시대라면 상당히 급진적이다. 당시 지식인 이재운은 ‘해동화식전’에서 대담하게도 ‘돈은 좋은 것’이라며 대놓고 찬양한 것이다. 그는 “부란 사람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맛좋은 생선회나 구운 고기와 같은 것”으로 “제각기 자기 일을 열심히 하여 즐겁게 이윤을 추구하니 마치 바싹 마른 장작에 불이 옮겨붙어 활활 타는 것과 같다”고 했다.

특히 군자와 소인에 대한 유교의 기준을 부정한 게 압권이다. 군자는 의로움을, 소인은 이익을 추구한다는 유교와 달리, 군자도 이익을 추구하고, 소인도 의로울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재물을 모아 남을 돕는 것이 가난하지만 어진 것 보다 낫다고 여겼다. 심지어 가난을 악덕으로 봤다.

조선 최초의 재테크서라 할 만한 ‘해동화식전’에는 부의 축적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부분과 아홉명의 부자를 소개한 열전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아홉 상인은 대부분 자수성가한 인물로, 사대부부터 거지까지 신분도 천차만별이다.

이재운은 부자를 다섯가지 유형으로 분류, 치산(治産)을 으뜸으로 쳤다. 치산을 잘하는 사람은 거부가 되고, 그 다음은 아끼고 절약하는 사람, 다음은 변화를 일으켜 형통하는 사람, 고생을 참고 근면하게 일하는 사람 등이다. 아무 수완이 없는 사람은 거지로 산다고 직설했다.

열전에는 국제무역과 대부업으로 거부가 된 청년을 비롯, 지독하게 아끼기로 유명한 자린고비 전설의 주인공, 신묘한 경영술로 집안을 다시 일으킨 부인, 자신을 믿고 돈을 맡긴 주인을 위해 충심껏 돈을 불려 돌아간 노비 등 면면이 다양하다. 신의를 지켜 중국까지 이름이 알려진 거지, 무일푼 고아끼리 만나 10년동안 부지런히 일해 부유해진 부부, 아끼고 아껴 부자가 된 평민, 대기근에 무너지지 않고 열 명의 아내와 함께 일해 큰 마을을 이룬 남자, 글 공부를 그만두고 농사에 힘쓰며 이웃을 구제해 큰 부자가 된 양반까지 흥미로운 얘기들이 담겨있다.

부자들을 탐욕과 부정의 화신으로 본 게 아니라 욕망에 충실하며 더 나은 삶을 추구한 인물로 본 것이다.

이재운은 명문가 서자 출신으로, 토정 이지함 이래로 경제와 상업 유통을 중시하는 집안의 전통 속에서 탁월한 글솜씨를 자랑했지만 오랫동안 관직에 오르지 못했다, 55세에 겨우 벼슬자리에 올랐지만 붕당 갈등으로 이용당하고 귀양을 가는 처지가 됐다. 이는 ‘해동화식전’의 배경이 된다, 좌절한 지식인의 열망이 부를 당당히 추구하는 가치관을 낳은 것이다. ‘해동화식전’은 조선 후기 중상주의적 경제론이 만개하는데 밑거름이 됐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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