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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개인용 벙커 붐…“불안이 팔린다”
재난 대비용 하우스 인기몰이
수십억 고액에도 거래 이어져
일부 ‘재앙 상품화’ 회의론도

높은 천장과 넓은 거실, 수영장과 사우나, 영화관까지 딸린 미국의 한 초호화 아파트. 지난 2011년 지어진 이 아파트는 130만 달러(한화 약 15억 원)를 훌쩍 넘는 가격에도 불구, 준비된 12채의 물량이 불과 몇 개월 사이 모두 판매됐다. 완판의 비결은 일반적인 주거공간과 차별화된 용도다. 부동산 개발업자 래리 홀 씨는 “이 주택들의 진가는 지구 종말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고 했다. 홀 씨는 군사 핵 미사일 저장고를 개조해 이 아파트를 만들었다.

최근 미국에서 각종 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벙커(bunker) 하우스’가 인기다. 각종 테러와 경제 위기, 기후변화 등 거듭되는 위협 속에서 사회적 불안감이 고조되고, 덩달아 개인의 ‘생존’을 위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생긴 현상이다. 통상 적군의 공격을 피하는 용도로 만든 지하 군사시설을 뜻하는 벙커는 이 같은 불안 심리와 생존을 위한 수요에 침투하며 개인용 벙커 하우스라는 ‘블루오션’을 창출하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에서 최근 일고 있는 ‘벙커 붐(boom)’을 조명했다. NYT는 “끝없이 커지는 생존위협과 날로 새롭게 생기는 위험으로 인해 개인용 재난 대비 산업은 수백만 달러의 상품이 거래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고 전했다.

개인용 벙커를 찾는 이들의 공통된 목적은 재앙으로부터의 생존이다. 고객들은 생존에 대한 댓가로 막대한 비용도 감수한다.

특히 단순히 개인적 위협이 아닌 전지구적, 국가적 위기에 대비해 개인이 직접 행동에 나서고 있다는 것은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NYT는 벙커 고객들은 진보, 보수 등 이념과는 또 다른 차원의 ‘정치적 불신’과 함께 존재하고 있다면서 “일종의 세계적인 변화와 힘이 사회를 대규모 재난에 점점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는 믿음”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미국은 벙커를 개발하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지역 각지에 냉전 기간 동안 군대가 핵탄두를 제조하거나, 미사일 저장 용도로 사용한 지하 기지들이 ‘무주공산’의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개발자들은 냉전 시대의 잔재를 값싸게 매입, 초호화 은신처로 탈바꿈시켜 비싼 가격에 판매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이고 있다.

반면 벙커 하우스를 놓고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재앙을 ‘상품화’하는 것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찮다. 최근 미국에서 불고 있는 ‘벙커 붐’은 두려움을 활용한 개발업자들의 상술이 적중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2012년 인류종말론을 연구했던 존 W.훕스 미국 캔자스대 인류학과 교수는 개발업자들이 ‘생존 포르노’를 팔고 있다고 비판했다. 훕스 교수는 “두려움은 성(性) 상품보다 더 잘 팔린다”면서 “그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온갖 물건을 팔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손미정 기자/bal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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