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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러시아 대령의 입만 바라본 대한민국 청와대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기자들 앞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는 러시아 측의 입장이 있었다”, “(러시아 군용기는) 기기 오작동으로 계획되지 않은 지역에 진입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입장을 발표했을 때 언론은 대서특필하며 러시아가 사과했다고 전했다. 여권 지지층은 그 뼈다귀에 살을 붙이다못해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러시아가 인정한 것”이라는 희한한 과장까지 붙여서 전파했다.

몇시간 뒤 국민들이 접한 현실은 그와 달랐다. 속된 말로 청와대의 발표가 ‘설레발’ 이었고, 실제로는 우리 영공은 러시아 군용기에 침범당하고, 러시아는 그걸 부인하는 상황이었다. 세월호 사고 초기에 아이들이 전원구조되었다는 오보가 줬던 안도감이 몇 시간 뒤에 진실의 참혹함을 몇 배로 배가시켰듯, 청와대가 앞장서서 낸 가짜뉴스는 국가의 신뢰성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세월호 사고에서 침몰 자체에 대해 국가가 비난받을 여지는 적었다. 비록 선박 관리에 다소간의 허술함이 노출되었다 해도, 특정 정권이 비난받을 성격은 아니었다. 대중의 분노와 허탈감이 집중된 것은 인명을 구조하고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무질서함과 조직 간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은폐 시도 등이었다. 마찬가지로 이번 영공침범 사태의 책임은 중국과 함께 우리 방공식별구역 내에서 도발적인 훈련을 감행한 러시아에 있다. 하지만 청와대의 위기관리 능력에도 심각한 허점이 노출되었고, 우리 책임자들의 외교·안보를 대하는 진정성도 의심받게 됐다.

우선 정부가 멀티태스킹 능력이 있지에 대해서 의구심이 든다. 윤도한 수석이 러시아 정부의 입장을 제대로 확인하는 과정 없이 무관의 모호한 표현을 바탕으로 “유감 표명”을 발표한 의도는 반일로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정권이 국민의 관심이 분산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정부는 항상 정권 지지율을 어떻게 유지할지에 골몰한다. 국민들은 며칠 전까지도 정부가 러시아를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우리에게 불산을 수출해주겠다고 제의한 ‘착한 나라’로 묘사해왔기 때문에 영공침범을 더 의아하게 받아들였다. 기업들은 러시아의 불산을 우리 반도체 공정에 적용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이야기했지만 이미 대안에 목마른 국민들은 정부의 그 성급하고 과장된 발표를 믿었던 것이다. 그 국민들의 신뢰를 등친 것이다.

국가 간 외교에서는 자구 하나가 중요하고, 무엇보다도 너무 희망적이어서도, 너무 비관적이어서도 안된다. 이번에 청와대가 보여준 행복회로가 윤도한 수석 개인의 판단이기는 어렵다. 개인의 일탈이거나 실수라면 당장 윤 수석은 야당의 주장대로 즉각 해임되었어야 하지만 경질 이야기가 전혀 없는 것은 상급자가 지시한 대로 따른 것이라는 의미다.

이미 러시아는 영공침범을 부인하는 외교 전문을 윤 수석이 발표하기 한참 전에 청와대 국가안보실로 보냈다. 그래서 우리는 거짓발표를 기획,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지 집요하게 물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정권이 이런 대국민 행복회로 기만술을 쓰지 못한다. 현 정부의 청와대비서실 조직도를 살펴보면 윤 국민소통수석 위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상급자는 바로 노영민 비서실장이다. 조직도상 국민소통수석에게 이러한 잘못된 정보에 기반한 브리핑을 지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결국 노영민 실장과 대통령이다.

지지율 관리를 위한 충격 완화요법으로 외교를 다루는 것이 노 실장 또는 대통령의 철학이라면 심각한 상황이다. 혹시라도 노 실장이나 대통령이 지시한 것이 아니라 해도 큰 문제다. 비서실장이나 대통령이 아닌 정무적 판단을 하는 또 다른 주체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지난 정부를 파탄에 몰아넣었던 형태의 비선 실세의 존재를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노출된 외교안보라인의 의사결정 구조를 들여다보면 많은 국민들이 의구심이 들고 있는 대일외교에서의 우왕좌왕도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죽창, 의병, 애국과 이적까지의 혼란이 누구의, 어떤 정무적 판단에 의해서 나오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앞으로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야당은 러시아 영공침범 관련 혼선에 대해 실체적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캐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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