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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 & 스토리] 유동근 “대중문화예술인의 길, 좀 더 자부심 갖고 걸어야”
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 이사장 맡아 동분서주…“기능적 연기교육 치우치면 안돼…인성·윤리교육 중시 ‘한류인재양성 프로젝트’ 가동중”
유동근 이사장은 드라마의 인물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감정의 흐름을 표현해왔다. 이제 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 이사장으로 선후배를 만나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있다고 했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배우 유동근은 1980년 TBC 23기 공채 탤런트로 연기를 시작했다. 39년동안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했다. 특히 ‘장녹수’ ‘조광조’ ‘용의 눈물’ ‘명성황후’ ‘연개소문’ ‘정도전’ 등 사극에 많이 출연했다. 그중에서도 형제를 죽이면서 권력을 확보하는 이방원을 연기한 KBS 사극 ‘용의 눈물’(1996~1998)은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 전에도 사극에 출연했지만 김재형 감독님을 만나면서 사극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 분이 나에게 조선왕조실록을 공부하게 했다. ‘너는 읽어라. 나는 들을테니까’ 일종의 사극수업이었다. 지겨운 과정속에서 나는 도망가고 싶기도 했지만, 그 분으로 인해 나의 사극 아우라가 만들어진 것이다.”

유동근이 사극 옷을 입은 이유=김재형 감독은 유동근에게 매번 책 읽어라, 콘티를 베껴보라고 깐깐한 선생님처럼 대했다. 유동근은 당시에는 곤룡포를 입고 수염을 붙이는 것조차 싫었다. 하지만 ‘그 분’의 가르침이 그립다. 지금도 김재형 PD의 친동생인 김재연 전 KBS PD(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부학장)와 연락하며 ‘그 분’ 얘기를 한단다.

KBS 사극 ‘정도전’(2014)도 그에게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유동근이 이성계를 연기한 ‘정도전’은 정통사극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

“정통사극이 역사를 강제로 시청자에게 알리려고 하면 곤란하다. 가르치려고 하게 되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신봉승 선생님도 말씀했듯이, 역사가 앞서가서는 안되고 인간관계속에서 역사가 따라와줘야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정현민 작가와 강병택 PD가 큰 일을 한 거다.”

중년이 되면서 자식들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아버지의 삶을 그린 KBS ‘가족끼리 왜 이래’(2014)와 첫사랑 장미희와 60대가 돼 다시 만나 사랑을 키워나가는 KBS ‘같이 살래요’(2018년)에 출연했다. 얼마전에는 은행을 배경으로 하는 장르물인 ‘더 뱅커’(2019)에서 은행장 역을 맡았다.

유동근은 지금까지 42개의 드라마, 12개의 영화에 출연했다. 드라마에 대해 한마디만 해달라고 했다. “대하드라마, 정통사극은 꼭 부활시켜줬으면 한다. 예산상으로만 얘기할 게 아니다. 공영방송 사극은 국민의 역사의식을 강화시켜준다.”

배역을 맡을 때마다 인간에 대해 공부하는 배우=유동근은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졸업했다. 군대를 마친후 후배들과 80년 TBC 23기 공채 탤런트 시험을 봤다. 왜 연기를 택했는지를 물어봤다.

“저의 형님이 나에게 드라마센터에 가라고 했다. ‘너는 영어, 수학이 안되니까. 그 곳은 그게 없다’면서. 그래서 그 곳은 뭐가 있냐고 물어봤더니 연기만 잘하면 된다고 했다.”

유동근은 처음에는 연극과의 수업에 적응하지 못했다. 발성 연습한다고 소리를 크게 지르고, 구름 위에서 춤을 추는 듯한 동작들을 즐기지 못했다. 하지만 군대에서 인간의 내면에 대한 생각을 좀 더 깊이 있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극도 흥미로워졌다.

“1980년에 TBC에서 한 달 월급(23만원) 받고 방송국이 통폐합돼 KBS로 출근했다. 하지만 그 곳에서는 텃세와 무관심뿐이었다. 당구장에서 게임을 봐주며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시기에 배우가 인간에 대해 알아야 하고 인생을 깨우치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당구장을 오가며 만난 수많은 사람들, 방송국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듣는 귀가 밝아지고 보는 눈이 많이 넓어졌다.”

유동근은 처음에는 연기를 하면서 1등이 되려고 했다. “공부는 못했지만, 연기자의 서열은 인기순이었다. 연기에서 1위를 하는 것을 어머니에게 보여주려고 한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시야가 많이 넓어진 그는 2016년 3월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이사장이 돼 배우로서의 경험을 확장시켰다. 한국방송연기자협회는 1971년 초대회장 이순재를 중심으로 부회장 최정훈, 최불암 등이 주축이 돼 만든 연기자 모임 중 가장 오래된 공신력 있는 비영리단체로 각 방송에 출연중인 1,700여명의 방송연기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2016년 12월에는 총 2만5000여 회원에 6개 예술인 단체를 합쳐 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도 결성해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유동근은 초대 이사장 취임사에서 “방송예술인들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확고한 문화예술정책을 우리 대중 문화예술인들의 힘으로 만들어 내자. 모두 힘을 모아 주실 것”라며 도움을 당부했다. 현재 방송연기자 협회 이사장은 배우 정보석이 맡고 있다.

이들 협회와 연합회는 재정이 넉넉한 단체가 아니다. 하지만 유동근은 오히려 “가난한 게 축복이다. 할 일이 많다는 거다”라는 자세로 업무에 임했다. 유동근은 또 4년째 서울드라마어워즈 심사위원장도 맡고 있다.

“협회, 연합회 살림살이를 맡고 보니 다른 삶이 보였다. 일을 하면서 유명하지 않은 연기자들의 어려운 삶을 알게 됐고, 그들의 존재가 매우 크다는 깨우침도 얻게됐다. 배우는 예술적인 몸짓으로 돌파구를 찾아나간다. 다양한 배역을 맡으며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더 많이 상대할 수 있는 현장이 나를 성숙시켜주었다. 이름 없이 외길을 걸어온 사람 역시 훌륭한 존재라는 깨달음은 또 한번 나를 변화시켰다. 나는 상위 5%의 배우들만 경험했다. 95%는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스스로 꼴찌라고 생각하며 용기를 얻어 다시 시작하게 됐다. 이 꼴찌를 동료 선후배들이 도와줘 연합회가 일궈졌고, 정부예산을 받아 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실시하게 됐다. 도움을 준 문화부와 콘진원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방송예술인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 기능적 배우 교육과는 차별화=유동근은 대중문화예술인의 역량 강화 및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했다. 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가 한류인재 양성 프로젝트(K-PAEC) 1기생 60명을 뽑아 지난 6월 10일 오리엔테이션을 거쳐 오는 10월 4일까지 16주간의 교육에 돌입한 것.

연기자 부문(탤런트, 성우, 코미디언, 연극)과 가수 부문으로 나눠 역량강화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연기자 부문 참가자는 주로 대학 연극영화과 등 연기관련 학과를 졸업했거나, 현업에서 소속사 없이 독립적으로 연기하고 있는 배우들로 구성돼 있다. 유동근은 “모든 참가자와 면담을 하고 있는데, 정말 우수하며 기본이 잘돼 있는 배우들이 많다. 기본이 안돼 있으면 그 위에 건물을 지을 수가 없지 않나”라면서 “기능적인 배우를 양산하는 제도와는 완전히 차별성을 띠고 있다. 인성과 윤리에 대한 교육을 특히 중시한다”고 설명했다.

예술은 인간과 분리되지 않으며, 건강하지 못한 콘텐츠는 사상누각임을 인지시키는 교육이다. 주입식 교육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특정 상황과 문제에 부딪혔을 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토론식, 쌍방향 수업도 진행한다. 성인지 감수성과 젠더 감수성에 대한 생각과 개념도 갖게 한다. 강사진도 이순재, 최불암, 신구, 고두심, 김영철, 유동근 등 오랜 연기 경험을 지닌 배우뿐만 아니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주철환 아주대 교수, 이연희 성우협회 이사장 등 전문가들이 대거 참가했다.

유동근은 “연예계를 강타하고 있는 각종 문제들을 뉴스로 접하면서 대중문화예술계 선배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건강한 연예생태계 조성을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해왔다. 한국대중문화예술원의 교육을 받은 배우라면 뭔가 다른 모습이 있구나 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게 교육하겠다. 스스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교육을 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유동근은 현장에서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기능적인 연기 교육에 치우칠게 아니라, 인문학적인 교육을 통해 자기 길을 스스로 걸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강사분들이 고맙고, 교육생들의 열의가 고맙다. 간식을 협찬해주는 행복상회에도 고마움을 느낀다.”

유동근은 탤런트, 성우, 연극배우, 코미디언, 가수 등 연합회 안에 들어와 있는 단체들을 합친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해, 정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누구는 힘들다, 어렵다는 식으로 산발적으로 말해서는 효과가 나지 않는다. 정부나 공공기관에서도 우리를 도와주려면 통합된 디비(DB)를 구축해 그 내용을 보면서 도움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2만5천여 회원이 신문고를 통해 알려졌을때 자생력을 갖춰갈 수 있다. 전산망은 구축 단계에 와있다. 하나의 대중예술 공동체라는 개념으로 생각한다. 배우의 경계선은 무너졌다. TV, 영화, 연극이 서로 오갈 수 있다. 인터넷 드라마, 넷플릭스 등 OTT, SNS 등 플랫폼 생태계가 복잡해지면서 좀 더 개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유동근은 “예술인 포럼을 만들어 서로 공부하고 어떤 시대상에 맞춰 나가야 할지를 토론할 것이다”면서 “대중예술인이 좀 더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겠다. 유명해지려고 이 세계에 도전하는 게 아니라, ‘나의 삶’, ‘나의 가치’에 도전하고 싶도록 동기부여를 해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병기 선임기자/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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