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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아버지, 계획이 뭐에요?”
#. 가족에게 “다 계획이 있다”라고 큰소리 치던 아버지. 졸업증명서를 위조한 아들을 향해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고 흐뭇해 한 그 아버지. 그러나 막상 벼랑끝에 몰린 아들이 아버지의 ‘계획’을 묻자 이렇게 말한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왜냐,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거든. 그러니까 계획이 없어야 돼, 사람은!”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의 유명한 장면이다. 그런데 요즘 일본 경제보복 사태 속 우리 정부의 대응을 보자니 왠지 모르게 이 장면이 겹쳐 떠오른다.

일본 아베 정부는 지난 4일 수출 관리 규정을 바꿔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요한 3개 품목 첨단소재의 한국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해 우리 대법원이 일본 전범기업에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렸을 때부터 이미 예고됐다. 8개월 만의 보복 카드인 셈인데, 사실 강제징용 배상 이슈가 불거졌던 2013년에도 일본의 보수 주간지가 “한국의 최대 급소는 경제”라며 노골적으로 금융공격을 언급한 적이 있다. 6년 전 경고처럼, 일본은 반도체라는 한국의 가장 약한 고리를 직접 겨냥했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경제를 엮어 칼날을 휘두르는 것은 매우 치졸하다. 일본 정부는 “양국의 신뢰 관계가 훼손됐기 때문”이라며 ‘보복’ 프레임을 벗어나려 하지만, 이번 조치는 누가봐도 무역보복이다. 다만 우리 정부가 외교력 부재로 사태를 키운 건 부인하기 어렵다. 대법원 판결 이후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양국 관계의 화약고가 됐다. 아베 총리는 1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이 끝났다. 구체적 조치에 대한 검토를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고 했다. 일본 재무상도 “일본 기업 피해가 현실화하면 여러 보복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기업인과 재일동포 뿐아니라 일반 국민조차 심상찮은 한일관계에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정부의 외교력을 기대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민주 국가에선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만 되풀이하며 사실상 손을 놓았다. “일본의 보복성 조치가 나온다면 가만있을 수 없다”(6월25일 국회 외통위) “다양한 (맞대응) 카드를 갖고 있다”(7월9일 국회 대정부질문)고 말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그 ‘계획’이 뭔지 도통 알려주지 않은 채 곧바로 아프리카로 떠났다.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정부와 정치권은 오히려 위험한 반일감정만 부추기는 모양새다. 의병을 일으켜야 한다는 여당 의원이 있는가 하면, 미국의 중재를 요청하러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김현종 청와대 안보실 차장은 “국채보상운동을 했던 것처럼 뭉쳐서 이 상황을 함께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국 민정수석은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노래 ‘죽창가’를 SNS에 올렸다. 냉정한 판단과 실질적인 해법으로 우리 산업에 미칠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그들이 국민들 듣기 좋으라고 큰소리나 치고 있을 땐가. 싸움이 길어질수록, 그 싸움이 말과 감정 충돌로 증폭될수록 어느 쪽이 불리할지는 뻔하다. 말을 앞세운 실익없는 소모전보다는 현명하고 실용적인 외교전을 펼쳐야 한다. 그래서, 나도 ‘기생충’ 속 아들처럼 묻고 싶은 거다. “계획이 뭐에요?” 

anju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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