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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기업가⑪]가난한 목수가 만든 나무인형, 전세계 장난감 시장을 평정하다
레고 창업주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
‘최고 만을 만든다’ 품질에 대한 철학 강조
미니어쳐 나무인형→현대식 레고 블럭 진화
컴퓨터 및 온라인게임 성장, 대규모 적자 ‘위기’
전문경영인 영입, ‘놀이의 본질’ 추구해 ‘부활’

1대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 레고 창업주[레고코리아]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 나무로 만든 오리인형이 인기를 끌던 시절, 하루는 오리인형 배달을 갔던 고트프레드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 기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 기분 좋은 이유를 묻자 “오늘 배달하고 온 오리인형들은 광택제를 두겹만 칠했는데, 평소 아버지가 세겹씩 칠하는 것과 별 차이도 없고 작업시간과 재료비도 절약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이 말에 올레는 크게 화를 내면서 “당장 배달한 인형을 되찾아와 직접 광택제를 덧칠하고 다시 배달하라”고 했다.

세계적인 장난감 레고를 만든 창업주 올레의 품질에 대한 철학을 보여주는 일화다. 이 일을 계기로 후일 아버지에 이어 레고그룹의 2대 회장이 된 고트프레드는 ‘최고 만이 최선’이라는 레고의 철학을 마음 속 깊이 새기게 됐다.

전세계 어린이들의 장난감 대명사로 꼽히는 레고 브릭(부품)은 올해 탄생 61주년을 맞았다. 매년 전세계에서 판매되는 레고 브릭 수는 무려 700억개에 달한다. 레고는 가난한 목수였던 올레가 자식들에게 선물해주려고 나무로 만든 장난감이 시초였다.

레고그룹 로고[레고코리아]

▶‘목재완구’ 만든 올레, ‘플라스틱 완구’ 추진=1934년 덴마크에 ‘레고(LEGO)’라는 장난감 가게 간판이 걸렸다. 목각인형을 파는 이 가게 이름은 올레가 집에서 담근 포도주 한병을 상품으로 내걸고 공모한 이름이다.

거기서 당선된 이름이 ‘레고(LEGO)’로, 올레 본인의 아이디어였다. 레고는 ‘잘 놀다(Play Well)’라는 뜻의 덴마크어 ‘LEG GODT’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완구 브랜드 ‘레고’가 사명으로 채택된 순간이다.

가난한 집안의 열째 아들인 올레는 1891년 덴마크 빌룬트에서 태어났다. 42세가 되던 해 빌룬트에 가구나 목재 완구 등을 생산하는 목공소를 설립했다. 처음엔 사다리나 다리미판 등 일상에서 쓰이는 목제품을 만들어 팔았고, 자투리 목재로 아이들을 위한 미니어처 완구를 만들어주곤 했다. 1930년대 초 전세계적인 경제불황이 닥치고, 아내와도 사별하자 올레는 목재 완구 생산에 더욱 집중했다.

올레는 ‘최고만을 만들고, 미래 건설자들을 섬긴다’는 원칙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품질을 향상시키고 생산을 효율화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에도 관심이 높았다.

곧 이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장난감 수요가 높아지면서 매출이 늘었다.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목재 수급이 어려워진 반면, 합성수지 기술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었다.

1946년 런던에서 열린 영국인 E. H. 윈저가 만든 플라스틱 사출성형기 전시회를 보러 갔다가 크게 흥미를 느낀 올레는 덴마크 최초로 플라스틱 사출성형기를 사들여 플라스틱 소재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다.

도입 초기 원료수급과 기계조작이 쉽지 않자 아들들이 플라스틱 완구 생산을 반대했지만, 올레는 신념과 통찰력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오늘날 레고 브릭의 시초인 플라스틱 소재 브릭 ‘오토매틱 바인딩 브릭’이 덴마크에서 출시된 것은 1949년이었다. ‘오토매틱 바인딩 브릭’이라는 이름은 1953년 덴마크어로 레고 브릭을 의미하는 ‘LEGO Mursten(레고 머스탱)’으로 대체됐으며, 모든 브릭에 레고 브랜드명이 각인돼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덴마크에서 ‘레고’ 상표를 등록했다.

2대 고트프레드 키르크 크리스티안센[레고코리아]

▶고트프레드, ‘현대식 블록’으로 업그레이드=1958년 올레가 심장마비로 별세하고, 그의 셋째 아들 고트프레드가 레고그룹의 2대 대표로 취임했다. 그해 레고 브릭 최초로 특허 출원을 했다. 고트프레드가 똑딱단추의 원리를 적용해 레고의 디자인을 개선해, 서로 결합할 수 있는 올록볼록한 모습의 현재 레고 블록의 모습이 완성됐다. 아이들이 무엇이든 상상하는 모습으로 모양을 쌓을 수 있는 장난감 레고가 탄생한 것이다.

1950년대 초반까지 레고 블록의 매출은 전체의 5~7%에 불과했고, 나무 장난감 매출이 90%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고트프레드는 레고 블록에 집중하기 위해 나무 장난감 제조를 과감히 포기했다. 그는 작지만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는 크기, 합당한 가격, 전 연령대에 재미 제공 등을 원칙으로 200여 가지에 이르는 현대식 블록 개발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판매 영역을 서유럽에서 미국, 호주, 아시아 등지로 확장시켰다. 그 결과, 1970년대 초 레고그룹은 본사 직원 1000명, 덴마크 전체 수출에서 약 1%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1979년에는 창업자의 손자인 크옐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 레고 3대 대표로 취임했다. 그는 1990년대 초까지 5년 마다 거의 두배 규모로 레고그룹을 급속히 성장시켰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급속한 시장변화에 뒤쳐지면서 파산 위기를 맞게 됐다.

3대 크옐 키르크 크리스티안센[레고코리아]

▶‘대규모 적자’…최대 위기 맞아=1970~1980년대 황금기를 구가했던 레고그룹은 2003년 매출이 30%나 급락하면서, 1억7000만 달러(약 1938억원)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1990년대 들어 닌텐도의 슈퍼패미컴,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를 비롯한 비디오 게임과 개인용 PC에 설치된 컴퓨터 게임과 온라인 게임이 크게 성장했다. 전통적인 장난감 시장이 위협받기 시작한 것이다.

마텔, 해즈브로 같은 레고의 경쟁사 제품들이 중국에서 저가로 생산돼 들여오고, 짝퉁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레고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다. 여기에다 인구 고령화와 출산율 감소로 장남감 소비 자체가 줄어든 것도 매출 및 수익 감소의 원인이었다.

레고 내부적으로는 무리한 사업 다각화와 기업의 공급 사슬 문제가 걸림돌로 파악됐다.

199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한 레고는 아동복, 패션잡화, 시계, 출판, 영화, 게임산업까지 진출했다.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돋운다는 목적으로 기존 블록과의 호환성을 무시한 채 정해진 모습으로 쉽게 조립할 수 있는 세트를 많이 개발했다. 레고 로고만 빼면 타회사 제품과 구별이 가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왔다.

신상품 개수가 늘어나면서 블록의 종류가 늘어나 생산 및 물류비용도 증가했다. 신제품 판매 부진으로 재고 비용까지 증가해 공급망 관리에서도 비효율성이 드러났다.

이는 ‘최고만이 최선이다’라는 회사의 모토와 달리 속전속결식 상업화에 물든 결과였다. 결국 레고의 핵심 고객층은 옅어지기 시작했다.

레고 부스트 [레고코리아]

▶‘놀이의 본질’ 성취감 느끼는 장난감으로 ‘부활’=레고그룹은 큰 위기감을 느끼며, 창업자 일가가 경영에서 물러나는 대대적인 혁신을 단행했다. 새 수장으로 40대의 젊은 전문경영인인 예르겐 비그 크누드스토르프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했다

크누스포르프는 우선 레고랜드와 컴퓨터 게임사업을 축소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수익성이 낮아 실속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레고랜드의 지분 70%를 세계 최대 사모펀드회사인 블랙스톤에 매각했다. 이와 함께 공장을 동유럽으로 이전해 인건비를 줄였다.

특히 놀이의 본질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놀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6개월 간 아이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한 결과, 아이들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도록 더욱 복잡하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장난감을 선호했다. 그 전까지 레고는 아이들이 만들기 쉽고 화려한 장난감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정반대의 결과였다. 이후 레고는 아이들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장난감을 고안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1만4200여 개에 달하는 레고 브릭 중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것은 과감히 생산을 중단했다. 대신 브릭으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의 지평을 넓혔다.

5세 이하 유아용 브릭인 ‘듀플로’ 시리즈를 강화하는 한편, 키덜트층을 공략해 5200개의 조각으로 구성되는 500달러 짜리 스타워즈 밀레니엄 팔콘 모델도 내놨다. ‘닌자고’, ‘프렌즈’ 등 자체 스토리 개발에도 매진했다. 닌자고는 기존 레고 스테디셀러인 ‘시티’ 시리즈와 60% 이상 브릭을 공유한다. 레고 고유의 보편성과 확장성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레고 캐릭터에 스토리를 입힌 영화도 제작했다. 2014년 개봉한 ‘레고 무비’는 당시 미국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영화 자체로 벌어들인 수익만 590억원에 달했다. 레고 영화의 흥행은 레고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레고그룹의 글로벌 매출은 2009년 2조원대에서 지난해 6조4000억원대로 성장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 역시 5100억원 대에서 1조89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대규모 적자 위기로 한차례 파산 위기를 맞았던 레고. 하지만 ‘아이들의 성취감을 느끼는 장난감’이라는 창업주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면서 반세기 넘게 사랑받는 ‘세계 3대 완구제조사’로 지금까지 자리를 굳히고 있다.

yeonjoo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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