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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누구를 위한 최저임금 인상인가
패밀리 레스토랑은 살뜰한 서비스가 강점이다. 입구에서 안내를 받는 순간부터 손님은 자리를 뜰 필요가 없다. 전담직원이 주문도 받아주고 틈틈이 찾아와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살펴준다. 계산도 직원이 찾아와 처리해준다.

올해 초 찾았던 한 샐러드바는 이런 통념을 깨는(?) 매장이었다. 입구는 일명 ‘스마트 키오스크’라는 기계가 손님들을 맞았다. 고객이 직접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입장 순서가 됐을때 카카오톡 메신저로 알려줬다. 심지어 고객들이 다 먹은 후 접시도 직접 치워야 했다. 퇴식구 주변은 음식 잔여물이 바닥에 떨어져 지저분했고, 누군가 지나가다 미끄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이런 고객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장은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다. 홀을 살피는 직원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수년간 지속된 업계 부진에 최저임금 인상 직격탄이 합쳐진 결과다.

내년 최저임금을 정하는 협상이 진통을 겪고 있다. 8일 한국경영자총연합회에서 진행하기로 했던 기자간담회가 갑자기 취소되는 등 난관이 여전하다. 올해는 사용자단체간에도 의견 조율이 쉽지 않다는 후문이 들려온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한다. 노동계의 ‘1만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공약 실현이란 뿌듯한 성과만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경제계의 8000원 요구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제계의 8000원은 현행 최저임금(8350원)을 삭감하자는 얘기다.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최저임금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최근 2년여간 최저임금 인상이 무엇을 남겼는지 보면 이 같은 요구가 무리도 아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357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응답이 69%를 차지했다. 이들은 현재 경영상황이 어렵고(60.8%), 경영 애로에 최저임금이 미친 영향이 100점 만점 기준으로 60.3점에 달한다고 답했다.

체감 고용지표도 나빠졌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에 따르면 최저임금 근로자가 많은 도소매, 음식, 숙박업의 전년대비 고용 증가율이 2017년에는 3.8%에서 2018년 -11.7%로 떨어지더니 올해 1월 -10.8%를 기록했다.

근로자들조차 내년 최저임금 인상에 회의적이다.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전국 근로자와 자영업자 등 800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임금 근로자의 37%가 ‘내년 최저임금은 동결해야 한다’고 답했다. 특히 300인 이상 대기업 사업장은 33%가 동결을 원했는데, 10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이 비율이 44.4%까지 올라가는 등 영세 사업장에서 동결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영세 사업장에 근무할수록 최저임금 인상에 회의적인 이유는 현행 최저임금제가 중소기업에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중기들은 사실상 최저임금이 1만원을 넘어섰다고 항변한다. 최저임금 8350원에 유급 휴무일수와 상여금, 4대 보험, 퇴직금, 기타 수당을 포함하면 기업의 시간당 부담금은 1만6000~1만7000원선까지 올라간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의 2배에 달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감안한듯 노동계에서는 재벌 대기업이 최저임금 인상 비용을 분담하는 방안을 강구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중기 부담이 과중하니 대기업이 대신 내달라는 요구는 시장경제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단기간에 논란을 불식시킬 묘수가 없다면 우선 시간을 버는 것도 답이다. 가뜩이나 ‘최저임금 과속스캔들’이란 비판이 나오는 판국이다. 당장 중소기업들은 설문조사에서 내년 최저임금 인상시 “고용을 축소하겠다”(52.1%)고 답했다. 이 속도대로 밀어붙였다가 내년에는 샐러드바 매장에 주방 직원들마저 줄지는 않을까.

도현정 산업섹션 재계팀 차장 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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