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독이 묻은 종이’란 시에서 “대한민국 법원에서 보낸 소장을 받고/나는 피고 5가 되었다//두터운 종이에 쪽수도 매겨 있지 않았다/이걸 내가 왜 읽어야 하지?//한 편의 짧은 시를 쓰고,/100쪽의 글을 읽어야 하다니(…)/싸움이 시작되었으니/밥부터 먹어야겠다”며, 소송전에 임하는 마음을 담아냈다.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이란 시는 지난 2월 고은 시인이 1심 패소한 뒤, 즉각 항소하면서 이후의 항소이유서를 기다리는 심경을 담았다. “만루 홈런을 쳤는데도/튀어오르는 기쁨은 보이지 않았다”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소송을 당하고 지속적으로 시달려야 하는 상황을 야구에 비유했다.
“당사자 심문을 앞두고 3년이나 대기한 시립요양원에 자리가 나왔는데도 엄마를 옮겨드리지 못했다” ( ‘ 뭘 해도 그 생각’)는 시인은 올해 새해 소망에서 “화면과 자판의 이음새가 깨져 테이프로 고정시킨 노트북으로 책상 위의 괴물과 싸웠다”며, “내 노트북만 완전히 망가뜨리지 않는다면/한 해 더 살아주마”고 각오를 다진다.
최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내 생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며, 정신이 사나워져 시를 잊고 살았다”며, 어느 봄날 목련송이를 보고 노래가 나를 찾아왔다고, “사랑을 떠올릴 수 있는 동안은 시를 영영 잃지 않을” 것이라고 시쓰기를 다짐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