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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장품회사, 페미니즘을 말하다…바바라 크루거 아시아 첫 개인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전
전생애 40년 작업 총망라 대규모 회고전

바바라 크루거 Untitled (Forever) 설치전경 [사진=이한빛 기자/vicky@]
Untitled(Your body is a battleground)(1989), 페이스트업 작품 [사진=이한빛 기자/vicky@]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1989년 워싱턴에서 열린 낙태 방지법 집회엔 강렬한 포스터가 뿌려진다. 흑백의 반전된 여성의 얼굴위로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Your body is a battleground)’는 글씨가 선명하다. 이 포스터로 무명의 작가였던 바바라 크루거(BarbaraKrugerㆍ74)는 단번에 그 존재감을 미술계는 물론 대중들에게까지 각인시켰다.

페미니스트 아티스트로 유명한 바바라 크루거의 첫 아시아전시가 서울에서 열린다.

아모레퍼시픽뮤지엄(관장 전승창)은 ‘바바라 크루거 : 포에버’전을 6월 27일 개막한다고 밝혔다.

전시엔 초기작인 1980년대 작품부터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한글 작품 2점까지 전 생애에 걸친 작품 44점이 나왔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바바라 크루거 : 포에버 전시작품 [사진=이한빛 기자/vicky@]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한글 설치작품 <무제(제발웃어제발울어)> [사진=이한빛 기자/vicky@]

잡지 디자이너로 출발한 작가는 광고 매체를 활용한 작품으로 익히 알려져있다. 잡지나 신문 등 미디어에서 추출한 이미지를 변형하고 그 위에 텍스트를 넣는데, 붉은색, 검정색, 흰색의 글 상자 안에 두껍고 강렬한 글꼴로 임팩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무제(Your body is a battleground)’(1989)와 ‘무제(Your gaze hits the side of my face)’(1981)가 대표적 작업들이다.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현대미술에서 크루거의 이같은 접근방식은 한편 전복적이기까지 하다.

전시엔 초기 페이스트업 작품 16점 외에도 지난 2017년 처음 공개됐던 ‘무제(포에버)’도 나왔다. 전시실 전체를 레터링한 작업으로 ‘당신(you)’이라는 글자가 거대한 사이즈로 새겨졌다. 그 아래에는 ‘지난 수 세기 동안 여성은 남성의 모습을 원래보다 두 배 멋지게 보여주는 마법 거울 같은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을 당신을 알고 있다’는 문장이 적혔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자기만의 방’에서 인용한 글귀다. 바닥에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인용한 문장이 깔렸다. 워낙 글자가 크기에 이를 읽어내기 위해선 전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한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측은 “몸의 경험도 크루거 작품에선 중요한 지점”이라며 “이리저리 이동하며 작품을 체험하며 다양한 질문과 생각을 떠올리는 능동적 태도를 갖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바바라 크루거 한글 설치작품 <무제(충분하면만족하라)> [사진제공=아모레퍼시픽미술관]

또한 영상작업 ‘더 글로브 슈링크스(The globe shrinks)’(2010)도 눈길을 끈다. 4개채널 비디오로 각 화면이 서로 대화하듯 영상이 이어진다. 광고라는 매체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 관객에게 익숙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거장의 끝없는 시도다.

여러모로 바바라 크루거의 회고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대미술사에서 워낙 중요한 작가이기도 하고, 아시아 첫 전시를 한국에서 한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또한 ‘#미투’ 움직임으로 여성미술가에 대한 재조명이 각광받는 시기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더욱 흥미로운 지점은 화장품회사를 모기업으로 둔 미술관에서 페미니스트 작가를 1주년 기념 전시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미술관측은 “한국에는 크루거가 페미니스트 미술가로 알려졌는데, 그걸 깨려고 전시를 준비했다. 작가는 우리 삶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다”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정작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는 영상을 통해 “나는 페미니스트다. 그러나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계급과 분리해 생각 한 적 없다”고 말한다. 전시장에 나온 작품들에도 이같은 여성주의적 시각이 잘 드러난다. 페미닌과 페미니즘의 흥미로운 충돌이다. 전시는 12월 29일까지 이어진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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