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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원 폭주’ 공정위 피로감 호소
작년 4만여건 민원·신고 신청중
법위반 판단 정식 접수는 4%뿐
업무효율-약자 보호 업무 상충
‘공정한 경쟁 유도’ 본업 충실해야



을(乙)의 입장을 중시하는 이른바 ‘김상조 효과’로 국민들은 공정거래위원회를 경찰과 같은 수사기관으로 인식, ‘돈 받아달라’는 민원을 쏟아냈다. 그 사이 공무원들은 업무 부담을 호소 중이다. 경쟁당국으로서 모호해진 역할을 되찾고 경쟁자가 아닌 경쟁을 보호하는 데 충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국회 등을 통해 입수한 자료와 통계연보 등에 따르면 지난해 공정위는 총 3468건의 사건을 접수했다. 이중 절반가량인 1747건에 대해 직권으로 조사에 착수했고, 나머지 1721건은 신고에 따라 사건으로 접수했다. 4만616건의 민원ㆍ신고 신청 중 공정위가 법 위반 사건으로 판단, 정식으로 접수한 사건은 4%에 불과했다.

민원ㆍ신고 신청 중 실제로 처리하는 사건이 소수에 불과하고, 매년 그 건수가 3000~4000건으로 변화가 없지만 실제 직원들이 처리해야 할 업무 처리량은 급증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하루에 20건의 민원ㆍ신고가 들어온 적도 있다”며 “민원 내용을 들여다보고 사건 접수 처리 여부를 결정하다 보면 100여건이 쌓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민원ㆍ신고는 대부분 공정위 본부가 아닌 지방사무소에서 처리한다. 공정위는 서울, 부산 등 5곳에 지방사무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서울과 인천, 경기, 강원까지 관할하는 서울사무소의 경우 전체 직원이 약 50명에 불과하다. 다른 지방사무소도 20명 내외뿐이다. 김상조 위원장이 지난달 말 단순 민원, 반복적인 신고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때문이다.

공정위는 업무 부담 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긴하다. 하도급 사건은 공정거래조정원으로 보내 조정을 시도한다. 가맹ㆍ대리점 분쟁조정 업무는 지방자치단체로 넘겼다. 반복 신고사건은 지방사무소에서 본부로 이관된다.

몰려드는 민원을 처리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공정위의 역할이 모호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업무 효율성과 경제적 약자의 보호자로서 역할이 서로 상충했다. ‘김상조 효과’의 그림자인 셈이다. 민사분쟁과 갑질 사건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도 문제였다. 석근배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공정위는 민원 기관이 아니다. 규제를 개선하고 경쟁질서를 세울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며 “민원은 공정위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지만 모든 사건을 다 처리하려고 하면 정말 중요한 사건에 소홀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 공정위는 물가 관리와 같은 민원성 업무에 소중한 행정 역량을 사용한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도 지난달 “공정위는 자유경쟁시장을 구현하는 경제부처이지만 지금은 사정기관화됐고, 정치적으로 자유롭지도 않다”며 경쟁당국으로서의 본래 역할에 충실하라고 충고했다.

신고사건 운영시스템을 선별적 신고처리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와 법무부(DOJ)은 수많은 신고사건 중에서 국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 정책적인 우선순위, 예산상의 제약 등을 고려해 선택적으로 사건조사에 착수한다. 김상조 위원장도 기본적으로는 모범적인 관행을 만들어 기업들의 자율적인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상고허가제에 대한 여론이 나쁜 것처럼 현실적으로 선별적으로 사건을 처리하겠다는 취지를 국민들에게 납득시키기 어렵다”고 봤다. 이상승 서울대 교수는 “법원의 역할을 강화하는 등 소비자, 중소기업들이 손쉽게 구제받을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야 공정위가 경쟁제한성이 심각한 사건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경수 기자/kwat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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