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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주거지원 그후②] “주거정책인가요, 결혼장려정책인가요?” 소외받는 비혼청년
-각종 정부 지원정책에서 외면받는 비혼청년들
-비혼청년 “아파트 청약은 남의 일…신혼부부 우선한 정책에 소외감 느껴”
-“현재 주거정책은 출산장려정책에 가까워…청년 1인 가구 차원 고려 필요”

[사진=123RF]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 비혼 1인가구 직장인 조모(29) 씨는 최근 결혼한 신혼부부가 주택청약에 당첨돼 서울 변두리 아파트에서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혼자 사는 청년 가구에게는 주택청약 당첨도, 결혼한 남녀가 잔뜩 당겨 받은 은행 대출액수도 꿈 같은 얘기다. 조 씨는 “결혼을 통해 두명의 자산을 합치지 않고선 구입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집값에 한 번, 힘들게 목돈을 마련해도 청약당첨에선 평생 후순위라는 사실에 두 번 좌절한다”고 하소연한다.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주변의 시선 쯤은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지만, 1인가구로 살아가며 피부로 느끼는 비용의 벽은 보다 현실적인 문제란 얘기였다.

청년층 사이에서 결혼은 내집을 얻어 분가하는 분기점이 된 지 오래다. 내집을 마련할 능력이 있으면 젊은 나이에 결혼하기 쉽고, 반대로 결혼을 통해 내집 마련 기회를 얻기도 한다. 주택지원 정책은 대부분 기혼자에게 주어진다. 물려받은 자산이 적거나 결혼도 하지 못한 저소득 비혼 청년들은 1인 가구인 탓에 주거비용 부담이 매우 크다. 정부의 청년·신혼부부 주택 지원 정책으로 내집 마련에 성공하며 결혼하는 신혼부부들이 늘어났지만, 저소득 비혼족엔 남 얘기다.

비혼을 결심한 직장인 이모(32) 씨 역시 최근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그는 “혼자 벌어 살아보니 현실적인 부동산 투자처는 원룸밖에 없다. 그러나 원룸은 아파트보다 투자가치가 떨어지고 되팔아서 벌 수 있는 차익도 많지 않았다”며 “한국사회에서 아직까지 평범한 사람들이 큰돈 버는 최고의 방법은 부동산이라던데, 적당히 버는 비혼족은 각종 지원책에서도 소외된다”고 말한다.

청년 1인 가구는 주거 취약계층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높다. 반전세나 월세등으로 매달 일정한 주거비용을 부담하며 살다가 갑자기 소득이 없어지면 몇년 안에 상황은 급격히 나빠진다.

비혼 직장인 조모(35) 씨 역시 실직 후 주거취약계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그는 “회사가 어려워 그만두고 1년 가까이 쉬었더니 모아둔 돈이 월세로 우수수 빠져나갔다”며 “어렵게 재취업하고 난 뒤엔 대출을 최대한 끌어서 하루 빨리 집을 마련하려했지만, 당첨 후순위인 내가 어느 세월에 아파트 청약을 따낼 수 있을까 싶다. 지금 속도로 벌어서는 서울서 원룸 하나 사는 데 10년은 걸린다”고 말했다.

[사진=헤럴드경제DB]

청년 1인가구가 대표적인 주거 취약계층이란 사실은 각종 지표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15년 사이 전 연령대의 주거빈곤율이 낮아졌지만 청년층 주거빈곤율은 오히려 높아졌다. 지난해 7월 통계청이 발표한 이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1인 청년가구의 주거빈곤율은 2000년 31.2%에서 2015년 37.2%로 상승했다. 6%p인 상승률은 같은 기간 전국 전체 연령대의 가구 빈곤율이 29.2%에서 12.0%로 17.2%p만큼 낮아진 것과 비교할 때 그 의미가 더 명확해진다.

결혼해야만 내집 마련이 용이하도록 짜여진 각종 지원책은 비혼족에게 압박으로 다가온다. 신혼부부를 위한 주거지원책이 늘어나 결혼 전 혼인신고부터 나서는 사례마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소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비혼족들 사이에선 위장결혼이라도 해야 하냐는 우스개 소리도 나온다. 비혼을 꿈꾸는 직장인 한모(31ㆍ여) 씨는 “한국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까지 목돈 벌 수 있는 기회는 아직까지 부동산 아니냐. 그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아깝더라”며 “나처럼 비혼을 원하는 상대방을 찾아 혼인신고를 하고 함께 주택청약을 신청하는 일종의 공통투자자가 되는 상상도 해봤다. 서류상으로는 부부 지위를 유지하면서 각자 인생을 사는 상상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청년 1인가구의 고민은 청년주거정책이 인구정책 혹은 출산장려 정책 차원에서 고안된 결과라고 비판한다.

민달팽이 유니온 최지희 위원장은 “청년층 주택지원은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으면’ 이라는 단서를 달고 고소득 다자녀 신혼부부 중심으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주거 정책이라기보다는 인구정책이나 출산장려 정책에 가깝다”며 “전세 매물이 귀해지는 상황에서 청년 1인가구의 삶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그래도 젊으니까 노인보다는 낫지’라는 마인드로 불행 경쟁을 시키는 상황이 계속돼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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