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주세 체계 개편]‘소비자 패싱’ 개편…외면받은 건강권ㆍ선택권
국내 맥주, 수입산과 동등한 경쟁 ‘긍정적 효과’
소주ㆍ와인 등은 제외…건전 음주 문화 형성 기대 외면
다양한 고급 술 수요도 유예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주세(酒稅) 체계가 50년 만에 개편되면서 국내 맥주 산업은 활기를 찾게 됐다. 하지만 소주, 와인 등 다른 주류들은 이번 개편에서 제외되면서 소비자의 건강권과 선택권은 유예됐다.

5일 기획재정부는 맥주와 막걸리만 알코올 함량이나 술의 부피ㆍ용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 체계로 전환키로 했다. 소주를 비롯해 와인, 고량주, 사케 등 나머지 주류는 현 종가세를 유지해 출고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이 매겨진다. 호주, 터키 등 국가들처럼 ‘종가세+종량세’를 병행하게 된 것이다.

가장 큰 혜택을 본 주체는 국내 맥주 3사이다. 맥주의 종량세로 현 주세 수준인 리터당 830.3원을 적용하면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에 동일한 세금이 부과돼 ‘과세 역차별 문제’가 해소된다. 그간 수입 맥주에는 홍보ㆍ마케팅 비용 등이 과세표준에서 빠져 국내서 생산하는 것보다 해외서 수입해오는 게 더 저렴했다. 이 때문에 국내 업체들이 하나둘씩 버드와이저, 호가든, 칼스버그 등 수입맥주들을 국내서 생산하다 해외서 수입하기 시작했다.


이번 종량세 도입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동등한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됐다. 국산 맥주의 세 부담 감소로 새로운 맥주를 개발할 여력이 생겼고, 30%~40%대까지 떨어진 공장가동률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산업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인 효과이다.

하지만 소주와 와인, 사케 등 나머지 주류가 종량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소비자의 권리는 외면당했다. 국민건강 증진, 합리적인 주세 개편 등 취지는 사라졌다. 건전한 음주 문화를 만들기 위해 물 값과 똑같이 1000원대인 소주값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무시됐다. 소주를 적게 마시더라도 와인, 사케, 고량주 등 다양한 술을 마시고 싶다는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화요, 일품소주, 안동소주 등과 같은 국내업체들의 고급 증류주를 육성할 기회도 잃었다. 그 대신 정부는 서민 증세라는 비판을 피하고, 소주 업체들의 기득권을 지켜주게 됐다.

또 이번 종량세 전환을 통해 소비자들이 얻는 혜택은 사실상 없었다. 정부는 앞으로 다양한 맥주ㆍ막걸리가 만들어지고, 청년들의 수제 맥주 창업도 활발해져 최종적으로 소비자 후생에 도움된다고 주장한다. 일부 타당하지만 맥주 산업에 대한 세부담 완화로 50년 만의 주세 개편이 끝난 데 대한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저가 소주는 부담없이 드시고, 돈 있으면 고급화된 맥주까지 많이 드시라는 시그널을 국가가 보내게 된 셈”이라며 “전면적으로 종량세를 도입하되 5년~10년에 걸쳐 전환하는 로드맵을 제시했다면 소주 업체는 생산설비 투자 변화를 통해 대비하고, 소비자들은 다양한 고품질 소주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나서서 업계와 국민을 설득했어야 했지만 주도권을 잃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맥주 산업을 키워 일자리 창출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주장이 타당하려면 왜 소주나 와인 등과 같은 다른 주류에는 종량세를 도입 못 하는지 되물을 수 있다”며 “담뱃값을 2000원 인상했을 때처럼 건강권 등 타당한 취지를 제시했더라면 국민들도 소주 가격 인상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kwater@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