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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신경숙 ‘작가는 왜 쓰는가’
첫 소설, 그것도 마흔이 다 돼서 쓴 소설이 권위있는 퓰리처상을 수상했다면 보통 운은 아니다. 데뷔작으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소설가 제임스 미치너 얘기다. 그가 쓴 40여편의 작품은 대부분 큰 인기를 누렸는데 국내엔 소개된 게 별로 없다. 아마도 미국 역사를 배경으로 그린 가족 서사가 그닥 공감을 주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듯 싶다. 이를테면 그의 작품이란 게 ‘하와이’‘멕시코’‘폴란드’‘알래스카’‘텍사스’‘캐리비언’ 식인데 마치 론니 플래닛 여행시리즈처럼 보이는데다 대부분 영문으로 800쪽이 넘는 점도 출판 부담이 됐을 게다. 그렇더라도, 뮤지컬과 영화를 좋아한다면 ‘남태평양’은 어디서 들어본 듯 싶을 수 있다. 바로 미치너의 데뷔작인 ‘남태평양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것이다.

미치너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라이프지에 소개하고, 한국전에 미 공군 제트기 조종사로 참가한 경험을 담은 ‘도곡리 철교’를 발표했다는 것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미치너는 말년에 ‘작가는 왜 쓰는가’ 라는 책을 썼는데, 젊은 시절 자신에게 영향을준 작가들의 얘기와 감명 받은 수많은 작품들을 낱낱이 적었다. 그는 거기서 “작가가 되는 과정은 책을 한 권 발간하는 것으로 시작되거나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 오히려 그 과정은 아주 어릴 적 시작되어 작가가 타자기에 글자를 찍어내는 한, 아니 오늘날 같으면 워드프로세서에 글자를 처넣는 한 계속된다”고 작가의 숙명에 강한 연대감을 나타낸 바 있다.

일본 현대문학의 거장 마루야마 겐지 역시 미치너처럼 데뷔작이 권위있는 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스타가 된 작가다. 겐지는 무역회사에 다니다 회사가 부도위기에 몰리자 소설을 썼는데, 이게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탔다. 그것도 22살이란 최연소였다. 그 뒤 겐지는 문단과 일절 교류하지 않고 오직 소설 창작에만 전념하겠다고 밝히고, 그렇게 해오고 있다. 그런데 그가 원칙을 어기고 외도한 게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란 에세이다. 그는 강연이나 TV출연에 나서길 좋아하고, 조금만 이름이 알려지면 목에 힘을 주고 특별대우 받기를 원하는 작가, 친목 쌓기에 급급한 편집자와 동시대 작품을 열심히 읽지 않고 못알아먹을 말만 잔뜩 써대는 평론가들을 싸잡아 비판하는데 우리 문단을 보는 것 같아 뜨끔할 정도다.

4년전, ‘표절 논란’으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소설가 신경숙이 칩거를 끝내고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달,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와 인터뷰한 데 이어, ‘창비’ 여름호에 소설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를 발표했다. 신 작가는 표절 논란과 관련, “젊은 날 한순간의 방심으로 제 글쓰기에 중대한 실수가 발생했고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한 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작가로서의 알량한 자부심이 그걸 인정하는 것을 더디게 만들었다”며, “걱정을 끼쳐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썼다. 그러면서 “이후의 시간이 저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저도 모르지만 저는 읽고 쓰는 인간으로 살며 제 누추해진 책상을 지킬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작가의 작품을 애독해온 독자들은 신 작가의 재개에 만감이 교차할 듯하다. 실망한 독자들은 여전히 쓴 소리를 내고 있지만 누구라도 작가의 글쓰기를 막을 순 없다. 다만 표절 논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문단권력’의 한 축인 창비가 앞장서서 작가의 컴백에 나섰다는 건 씁쓸하다.
 
이윤미 라이프스타일섹션 에디터 m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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