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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서보 화백 “벌거벗고 서 있는 심정”
국립현대미술관서 미수 맞아 회고전 
“숨기고 싶었던 것까지 모든 삶 담아” 
‘묘법’ 연작 중심 70년의 화업 총망라
 


“벌거벗고 서 있는 입장이다. 내가 숨기고 싶었던 것까지, 모든 살아온 과정을 다 드러냈다”

미수(米壽)를 맞은 화백의 고백이다. “그래도 배만 볼록 나온 노인네인 나보다 그림이 벌거벗고 서 있는게 훨씬 아름답지 않나”는 반문도 따라왔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대표적 단색화가로 거론되는 박서보 화백의 대규모 회고전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를 5월 18일부터 9월 1일까지 서울관에서 개최한다.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이어온 ‘묘법(描法)’ 연작을 중심으로 초기작품까지 70년 화업을 총망라하는 전시다. 1970년 전시 이후 선보인 적 없는 설치 작품 ‘허상’도 전시장에 나온다.

1950년대 초기작업인 ‘원형질’시기, 1960년대 후반 옵아트와 팝아트를 수용 기하학적 추상과 한국 전통 색감을 사용한 ‘유전질’시기, 어린아들의 서툰 글쓰기에서 착안해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고 연필로 수없이 선긋기를 반복한 1970년대 ‘초기묘법’, 닥종이를 재료로 한지 물성을 극대화, ‘지그재그 묘법’으로도 불린 ‘중기묘법’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이후 막대기나 자 같은 도구로 일정한 간격으로 고랑처럼 파인 면들을 만들어 깊고 풍성한 색감이 강조된 ‘후기묘법’이 시기별로 나뉘어 선보인다.

박서보 화백은 공식 오픈 이틀 전인 1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 직접 참석, 설명하는 등 정정함을 자랑했다. 전날 밤까지 전시장에 들러 작품 위치를 바꾸는 등 심혈을 기울였다는 후문이다. 휠체어에 의지했지만 작품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얽힌 이야기를 정확하게 전달했다. 전시를 담당한 박영란 학예연구관은 “제목처럼 지칠줄 모르고 작업에 매진하셨다. 평론가, 행정가, 교육자로서 한국미술을 일구고 이를 알리는데 힘써왔다”고 했다.

지금도 작업실을 운영하는 박화백은 21세기 현대미술에 대해 20세기와는 달라야한다고 강조했다. “회화란 캔버스에 이미지를 토해놓은 것인데, 아날로그 시대엔 괜찮았다. 그러나 21세기 디지털시대의 회화는 이래선 안된다”는 작가는 “지구 전체가 스트레스 병동으로 변했다. 그림에서 무언갈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이같은 감정을 흡입하는 흡인지가 돼 보는 이의 스트레스와 고뇌를 받아들여 줘야한다”고 강조했다. 예술의 치유역할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그러면서 후배 예술가들에겐 “예술가는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과 식을 줄 모르는 열정만 있으면 된다”고 조언했다. 시대를 담아내는 진리는 어려운 책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편, 전시외에도 국내외 연계프로그램으로 전문가들이 박서보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국제학술행사(31일), 작가와의 대화(7월 5일), 큐레이터 토크(7월 19일)도 예정됐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16일 “박서보 삶과 예술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이번 전시는 한국적 추상을 발전시키며 한국 현대미술 흐름에 큰 족적을 남긴 박서보의 미술사적 의의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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