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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송현정 기자의 ‘독재자 질문’ 후폭풍을 보며
다행이다. 송현정 KBS 기자에 대한 일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의 분노 표출법이 국민청원 이상이 될 것 같진 않다.

문 대통령과 송 기자의 단독 회견을 빠짐없이 봤다. 문 대통령은 ‘인사 참사 논란’, ‘야당의 독재자란 평가’ 등 뼈 아픈말을 들었다. 조금 있다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여부’라는 기습 질문이 들어왔다. 보는 입장에선 아슬아슬하긴했다. 끝날 때쯤 후폭풍이 상당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 정도니 다행이다. 어찌 보면 신상털이는 예고됐다. 댓글 테러, 국민청원도 예상된 일이었다. 자타공인 디지털 강국이다. 기초적인 공격 방식일 뿐이다. 물론 이 자체로 안타깝긴 하다. 다만 송 기자가 이 이상 일을 겪지 않은 데 안도했다.

문 대통령의 임기 초반 때를 돌아봤다. 몇몇 기자들은 김정숙 여사를 김정숙 씨라고 썼다가 댓글로 얻어맞았다. 영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했다. 얼마 후엔 일부 기자들이 무차별 댓글 공격에 시달렸다. 문 대통령이 구내식당에서 밥을 직접 덜어 먹는다는 글이었다. 밥을 ‘퍼서’ 먹었다는 표현이 거슬렸다고 한다.

이번에 불안감이 더 컸던 건 그 시기와 수위 때문이다. 다수의 전문가가 문 대통령의 집권 2년 차 성적표에 큰 점수를 주지 않은 게 사실이다. 취임 첫주 80%가 넘던 국정 지지율은 절반 수준으로 내려왔다. 그간 공을 들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하필 단독 회견 직전 ‘불상 발사체’를 쏴댔다. 송 기자가 일촉즉발인 상황인 때 아픈 질문 폭격을 한 셈이다. 그런데도 일부 극단 지지자를 뺀 대부분 국민은 이성 끈을 붙잡았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부끄러울만큼 ‘오버’한 우려였다. 다행이라고 거듭 말하는 까닭이다.

지금은 되레 청와대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 같다. 애초 문 대통령도 최대한 안전한 길을 고른 분위기다. 취임 2주년의 상징적 시기지만, 지금 상황에서 수십명 기자단 앞에서 질문 세례를 받는 건 쉽지 않다. 고심 끝에 이 방식을 택했다면 깔끔하게 끝났어야 했다. 중간중간 얼굴을 붉히는 장면은 시나리오엔 없었을 것이다.

청와대의 불편함도 이해는 간다. 문 대통령의 답변 도중 나타난 송 기자의 표정은 말끔하지는 않았다. 말허리를 끊는 끼어들기도 그들 입장에선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청와대는 이미 감정을 내보였다. 청와대는 단독 회견 이후 “대통령이 불쾌히 생각하지 않았으며 더 공격적인 공방이 오가도 괜찮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알 사람은 안다. 이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이 사안을 의식 중이라는 방증이다. 정말 문제가 없다고 봤다면 무관심으로 일관했을 일이다. 정치권에서 흔히 쓰는 ‘반응할 가치를 못느낀다’는 문법에 따라서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아예 기자란 듣는(聞) 존재라는 말로 송 기자를 은근히 꼬집었다. 졸지에 싸움을 더 부추기는 꼴이 됐다.

청와대가 움직였다. 그런데도 왜 돌풍이 불지 않을까. 본질을 비껴갔기 때문이다. 기자는 듣는 직업인 한편 ‘끊임없이 묻는 직업’이기도 하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2017년 기자협회보 인터뷰에서 한 말의 취지였다. 기자도 국민이고, 대통령도 국민인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선 더욱 잘 붙는 표현이다. 애초 듣고 받아쓰기만 한다면 성명서만 발표해도 될 일이다.

송 기자의 태도를 지적하려면 아예 진행이 안될 만큼 듣지 않는다든가, 아예 대답을 못할 만큼 엉뚱한 말을 한다든가 등 일이 있어야 했다. 그저 ‘기분이 나빴다’ 정도는 문제가 안된다. 방송사고는 없었다. 청와대가 역정을 내야 할 만큼 번지수를 잘못 찾은 질문은 없었다.

사실 분위기가 조금 더 수그러들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이미 이 자체로도 상당한 낭비가 이뤄졌다. 당장 문 대통령이 사라졌다. 국민은 문정부가 2년을 어떻게 꾸렸는지, 앞으로 3년을 어떻게 이끌지를 알아야 한다. 이슈가 되고, 토론될만한 대통령 말은 모두 묻힌 모양새다. 송 기자만 먼저 언급된다. 이후 소모적인 논쟁과 대립만 따라온다. 회견을 준비한 인력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청와대도 이런 모습을 바라진 않았을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단독회견 방식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애초 송 기자 한 명이 문 대통령과 질문을 주고 받을 때 나오는 결론은 둘 중 하나였다. 지금 같은 일이 없었다면 분명 정반대의 논란이 뒤따랐을 것이다. 그만큼 단독회견은 양날의 검이었다고 본다. 다음에는 보다 많은 매체가 참여하는 합동 회견 방식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문 대통령과 기자를 위한 길이다. 무엇보다 국민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이원율 정치섹션 국회팀 기자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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