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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할담비와 김혜자 그리고 세대의 공존
최근 이른바 ‘할담비’로 불리는 지병수(77)씨의 방송 출연이 부쩍 잦아졌다. KBS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손담비의 ‘미쳤어’를 부르곤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 영상의 유튜브 조회수가 200만 회를 넘겼고, 이후 지병수씨는 방송가의 주요 섭외대상이 되었다. 방송 출연에 의한 인기로 보기엔 파급효과가 엄청나다. 지금껏 <전국노래자랑>에 그 많은 출연자들이 있었건만, 어째서 지병수씨만 이렇게 화제가 됐을까.

그건 ‘할담비’라고 지칭된 그 별명 안에 답이 있다. 77세의 연세에 트로트를 부른다면야 뭐가 화제가 되겠냐마는 지병수씨가 부른 건 손담비의 섹시댄스가 포인트 안무인 ‘미쳤어’다. 젊은 세대들도 따라 하기 쉽지 않은 그 노래와 춤을 그는 ‘똑같이 할 순 없어도’ 그 연배에 맞게 귀엽게 소화해냈다.

아마도 완벽하게 똑같이 했다면 놀랍긴 하겠지만 이런 화제가 생기진 않았을 것이다. 나이 들어도 여전히 젊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젊은이들에게도 어떤 즐거움을 주는 그런 삶을 보여줬기에 화제가 됐던 것.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이미 2000년에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이 2010년 11%를 넘어섰고 2018년 14.3%를 넘어 ‘고령사회(14% 이상)’로 들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곧 ‘초고령사회(20% 이상)’로의 진입도 머지않았다. 이처럼 고령화 사회로의 본격적인 진입과 함께 ‘세대의 공존’ 문제는 더 중대한 사안으로 다가오게 됐다. 이제 점점 많아질 고령자들이 젊은 세대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좋은 사회를 위해 나아갈 수 있을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할담비 지병수씨에 대한 열광이 그저 우연적인 사건처럼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는 ‘세대의 공존’을 고민하는 지금의 대중들과, 그들이 나아가 어떻게 바람직한 노년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욕망이 스며있다.

최근 방영됐던 JTBC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김혜자에게 백상예술대상 대상의 영예를 안겨줬다. <눈이 부시게>는 알츠하이머라는 소재를 통해 젊은 세대와 노년의 삶이 어떻게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는가를 보여줬던 드라마다. 이 드라마에서 김혜자는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르신의 삶을 통해 그 얼굴의 주름 하나까지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

백상예술대상이 그에게 대상을 안긴 건, 단지 연기를 잘해서만이 아니라 그런 노년의 삶에 깃든 존엄성과 그럼에도 젊은 세대와 공존하려는 그 삶의 모습이 부여하는 시대성 때문이기도 했다. 단 몇 십 년의 차이로 노년이니 청년이니 나누지만 지나와 되돌아보면 삶은 그런 노년, 청년 구분이 무색할 정도로 짧은 순간이라는 것.

그러니 어찌 나이가 소통의 장애가 되겠는가. 주름은 연배의 서열을 말해주는 게 아니라 삶의 나이테 같은 것으로 누구나 넉넉히 기대게 해줄 수 있는 그런 것일 뿐이다.

어린 시절 어버이날이라고 하면 카네이션을 만들어 부모님 가슴에 달아드리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그만큼 ‘어버이’라는 단어는 절대적인 사랑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이 단어는 여러모로 오염된 면이 있다. 어버이연합 같은 일부 보수단체의 시대를 역행하는 말과 행동들 때문이다. ‘세대의 공존’을 고민하는 시대에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불통의 모습이 심지어 ‘어버이’라는 단어마저 그저 위계의 의미로 변질되게 만들었던 것. 결국 어른과 꼰대를 가르는 건 나이가 아니라 ‘소통’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할담비처럼 또 김혜자처럼 나이 들어도 지속 가능한 어른의 삶을 위해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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