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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순간이 파괴한 일상…치유의 길은?

2014년 ‘모든 빛깔들의 밤’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김인숙의 신작 장편소설 ‘벚꽃의 우주’는 죽음의 사건들이 어떻게 삶을 집요하게 장악해 나가는지 섬뜩하게 그려낸다. 죽음은 사소한 삐끗에서 시작돼 평온한 일상을 무참히 짓밟고 당사자 뿐 아니라 주변을 거침없이 파괴해 나간다. 벚꽃이 난분분 날리는 봄날, 낚시꾼 과부인 엄마와 새아빠가 될 남자, ‘천문대’, 그리고 열네살의 미라는 남자가 일하는 천문대로 소풍을 간다. 경사가 급하고 험한 길에서 잠깐 한 눈을 판 사이 끔찍한 사고로 엄마는 죽고 만다. 그 날 이후 미라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져 내린다. 죽을 날만 기다리는 외할아버지의 집에서 지내다 누군지도 모를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며칠 뒤 그 남자가 뺑소니 오토바이에 치여 죽는 걸 목격하게 된다. 누군가는 다치고 죽지만 마을은 고요하고 누구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맞선 자리에서 만난 말이 별로 없는 민혁은 미라에게 안정감과 믿음을 주지만 프로포즈를 받으면서 털어놓은 비밀은 엄마의 죽음 못지않게 미라를 흔들어 놓는다. 민혁이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94년, 같이 본드를 흡입하던 친구가 죽는 일이 벌어지고, 친구들과 함께 암매장한 것이다. 민혁은 자신은 결백하다며 시효가 끝난 21년동안 불안에 떨며, 착하게 살겠다는 다짐으로 죄값을 다했다고 말하지만 미라는 염증을 느낀다.

사건은 엄마가 남긴 보험금으로 저수지 낚시터 옆 옛집을 펜션으로 개조한 뒤 벌어지는데, 또 다른 미스터리 죽음들이 이어진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드러나는 반전을 이루는 소설은 추리소설처럼 속도감 있게 읽힌다.

화자가 죽음을 스스로 위로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은 꽤 드라이하다. 수없이 많은 우주가 있고, 평행우주가 있다면 지금 여기서의 죽음이 아닌 다른 형태의 삶이 있을거라는 희망이다.

죽음이 우리 주위에 널려있던 199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세월호 사건의 자장을 느낄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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