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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 국어바르게쓰기 공허한 외침
- 국어바르게쓰기위 권고 ‘행정용어 순화어’ 461건…수용은 제각각
- 한글날에만 ‘반짝’ 수용?…조직명ㆍ직책ㆍ공문서에도 외국어 버젓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서울시는 통합이동서비스(MaaS)를 시민들이 직접 제안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서울형 통합이동서비스 해커톤 대회를 연다.’ ‘서울시 핵심사업 홍보콘텐츠 제작에 참여할 청년 스타트업을 모집한다.’

서울시가 각종 시책을 대외에 알리기 위해 배포하는 보도자료에 최근 포함돼 있던 문구들이다. 다음달 15일로 탄생 622주년을 맞는 세종대왕이 들으면 진노할만한 단어가 귀를 거슬리게 한다. 이미 2년 전 서울시 민간 심의ㆍ자문기구인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는 ‘해커톤’ ‘스타트업’을 바꿔쓰라고 권고했다. 시는 2017년 4월13일 고시에서 스타트업을 ‘새싹기업’으로, 그 해 7월6일 고시에서 해커톤을 ‘끝장 대회’로 위원회가 권고한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권고는 권고일 뿐이었던 셈이다.

15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2014년 ‘서울특별시 국어사용조례’를 제정, 민간 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공공기관 공문서에 ▷시민이 일상에서 널리 쓰는 국어를 사용할 것 ▷저속하거나 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을 것 ▷무분별한 외래어, 외국어, 신조어 사용을 피할 것 등 우리말 사용 원칙을 천명했다.

이후 위원회가 정기적으로 자체 검토나 공무원ㆍ시민이 제안한 어려운 용어들을 심의해 이해하기 쉬운 한글로 바꾸면 시가 이를 고시를 통해 알리고 있다.

시가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행정용어 순화어’라며 고시한 건은 모두 461건에 이른다. 가장 최근인 지난 4일에도 시는 펜스, 중대재해(重大災害), 롤러, 전향적, DB, 커뮤니티 공간, 전도(前渡) 등 7건에 대해 바꿔야할 말로 고시했다. 각각에 맞는 순화어로 울타리, 큰 재해, 누름틀, 적극적ㆍ긍정적, 디비ㆍ데이터베이스, 소통(공동체) 공간, 선지급 등이 제시됐다.

하지만 시가 언약과 달리 ‘언행불일치’한 사례가 적지 않다. 그 중 ‘캠퍼스타운’과 ‘젠더’가 대표적이다. 캠퍼스타운은 대학거점도시나 대학촌, 젠더는 성인지나 성평등으로 고쳐쓰라고 권고했던 것들이다. 아직도 시 본청에는 조직명이 ‘캠퍼스타운활성화과’와 ‘젠더정책팀’인 조직이 있고, ‘젠더자문관’이란 직책이 있다.

앞서 시는 ‘해커톤’ 대회 개최를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해커톤이 ‘해킹(Hacking)’과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로 한정된 기간 내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집중적으로 발전시켜 프로그램과 제품 등 결과물을 완성하는 협업프로젝트 대회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는 끝장찾기, 끝장토론, 마라톤대회 등으로 써도 충분히 의미가 전달될 것으로 봤다.

461건 가운데 ‘플랫폼’은 기반이나 장, ‘푸드트럭’은 먹거리 트럭, ‘인큐베이팅’은 육성, 보육으로 대체 가능하지만 아직도 유입된 대로 쓰는 대표적인 외국어다.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 위원장인 구본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권고 대로 언중이 수용해서 쓰는 비율은 북한에서도 10%대로 낮다”며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했다. 신기술이나 새로운 조류가 유입되면 언중은 억지스러운 한글보단 의미 전달이 확실한 외국어 쓰기를 선호한다는 얘기다.

정인환 한글문화연대 사무국장은 “지난 2월 중앙정부 18개부처 공문서를 전수조사한 결과 50%에서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통 민간기업이 마케팅 차원에서 튀게 보이려고 외래어나 외국어를 쓰는데, 공공기관 조차 그런다”면서 “정책 수혜자인 시민, 특히 취약계층인 노인층까지 감안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바꾸고, 한글을 아껴쓰는 ‘본보기’ 자세가 아쉽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글 사용에 대해 협조 공문을 보내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각 과에 보도자료 작성자가 따로 있고 조직이 방대해서 구성원 전체가 일치돼 고쳐쓰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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