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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김준형 의사·칼럼니스트]지옥을 선택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 말기로 돌아간 상상을 해 보자. 그때는 먹을 것이 귀했다. 삼시 세끼를 챙겨 먹는 것은 부잣집 이야기였을 뿐 평범한 사람은 항상 배고픔에 시달렸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고깃국에 쌀밥은 행복의 상징이었다. 옷감도 귀했다. 여자들은 고된 하루 일과에 시달린 뒤에도 밤이면 베틀에 앉아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옷감을 짜야 했다. 처녀들은 새 옷 한 벌을 입는 것이 소원이었다. 여름에는 아무리 더워도 얼음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었다. 석빙고에서 얼음을 꺼내 먹는 것은 임금님에게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한 겨울 살을 에는 추위에도 여자들은 개울가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했다.

다시 시간을 되돌려 현재로 돌아와 보자. 지금은 식당에 가면 언제든지 고깃국과 쌀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너무 많이 먹어서 사람들은 다이어트에 신경을 써야 한다. 새 옷은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며칠 내에 집으로 배달된다. 여름에 마트에 가면 누구나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고 빨래는 세탁기가 한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생활수준은 조선시대 임금님에 못지않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사람은 행복을 오래 간직하지 못 한다. 배고플 때는 먹을 것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 그러나 막상 먹을 것이 풍족해지면 단순한 삼시 세끼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 푹푹 찌는 여름에 얼음물 한 모금만 먹으면 아무런 소원이 없을 것 같지만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사먹는 시대에는 얼음물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이렇듯 아무리 간절히 원했던 소망이라도 그것이 흔해지고 평범해 지면 더 이상 행복의 대상이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새로운 행복의 대상을 찾는다. 그러나 이 새로운 대상도 언젠가는 평범해지고 행복 리스트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럼 또 다른 대상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인간은 새로운 항목의 행복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존재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은 천국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들이 쫓는 것이 천국 보다는 지옥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과 쾌락은 상당부분이 천국이 아니라 지옥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버닝썬’ 사태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폭행, 마약, 성폭행, 탈세, 권력기관과의 유착, 동영상의 불법 유포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범죄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 사태의 주인공인 승리와 정준영은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연예인이었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했다. 그런데 왜 이들은 이런 몹쓸 짓을 했을까? 어쩌면 그들이 이런 범죄에 연루된 것은 무엇인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돈이 좀 생기니 더 이상 열심히 일하고 땀 흘려 버는 것에 매력을 느끼지 못 했던 것일까?

이들은 최고급 클럽을 만들어 폭리를 취하고 탈세까지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이들은 수많은 여성들의 관심을 받았고 일부 여성들과는 잠자리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들의 따분함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성관계 동영상을 찍어 SNS에 공유했다. 그것은 한 여성을 발가벗겨서 여러 남자 앞에 세우는 것만큼이나 가학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방법으로 쾌락을 즐겼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행복하지 못했던 이들은 결국 지옥을 선택한 것이다.

어쩌면 너무 많이 가진다는 것은 축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저주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나는 절대 지옥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거야’라고 확신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지옥의 유혹 앞에서 초연하기란 무척 힘들다. 인간은 쾌락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한번 되돌아보자. 많은 것이 부족하고 스스로가 초라해 보이는가? 살아온 세월이 후회스럽고 지금의 현실이 아프게 다가오는가? 그렇다면 무척 다행스런 일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천국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김준형 의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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