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평화교육’ 또는 ‘평화ㆍ통일교육’과 관련된 회의의 발표 또는 토론, 강연 요청이 잦다. 이런 요청을 수락할 때마다 통일과 평화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된다. 한때 ‘통일은 대박이다’는 슬로건이 사회를 휩쓸었듯이 어쩌면 지금은 ‘평화가 경제다’라는 슬로건이 사회를 휩쓸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하게 된다. 서로 분명히 다른 주장들인 것 같지만 어찌 보면 어딘가에서 논리구조가 맞닿아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적지 않다.

통일된 한국사회는 지금의 한국과는 전혀 다른 한국사회일 것인가. 이 미래시제의 질문에 오늘의 문제는 통일이 되면 많은 것들이 해소될 것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되어왔다. 그것은 분단이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적 모순의 원인이라는 진단에 따른 합리적 처방에 해당된다.

그런데 분단이 사회적 모순의 원인인가. 우리는 분단이라는 상황 또는 조건 속에서 살고 있으며, 한국의 사회적 모순은 그러한 조건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문제의 조건을 원인이라고 진단함으로써 어쩌면 적절치 못한 방식으로 우리가 처방을 내리고 있지 않은가라는 합리적 의심이 커진다. 분단이라는 상황에서 형성된 역사적 문제, 오늘 우리의 삶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을 키울 수 있어야 통일된 한국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평등, 실업, 차별과 부정의의 문제들이 관리되고 해소될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다. 평화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이 또한 어떻게 그런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가라는 인식의 부재를 지적하게 된다. 남북한의 분단체제가 해체되고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소위 ‘소극적 평화’가 확보되면 한반도의 번영이 확대될 수 있다. 그런데 그 평화를 이루는 것 자체만으로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그 평화는 남북한의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더 나은 조건일 뿐이다. 달리 말하면 평화는 더 나은 삶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지 그 자체만으로 번영을 가져오는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북한의 비핵화를 비롯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는 상황에서나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우리사회는 다양한 형태의 평화의 씨를 뿌려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하여 각자가 평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에 우리가 지향하는 평화의 상태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함께 그것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미래시제로 언급되는 한반도의 평화가 슬로건으로만 남지 않고 실현되려면 오늘 우리의 삶의 평화지향적 문화로 거듭나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로서의 평화는 주입식 교육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선 영국의 팝가수 존 레논이 ‘이매진’이라는 노래에서 이야기하듯 전쟁, 차별, 결핍 등이 없는 세상을 꿈꾸고 그런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님을 믿고 노력하는 그런 상상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 한국에서 벌어진 전쟁의 양민학살에 분노하고 그림을 그린 파블로 피카소처럼 나와 우리만이 아니라 타인들의 아픔과 상처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세 번째로 인종차별에 대해 과감히 ‘아니오’를 외치고 흑인민권운동을 이끌었던 로자 파크처럼 불합리한 제도에 의해 재생산되는 차별에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평화는 미래시제의 평화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오늘 우리 삶의 문화인 것이다.

오랜 동안 분단으로 인해 섬나라가 되어버린 한국에 분단의 극복과 평화의 구축이 매우 중요한 과제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 과제들은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처방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미래의 통일 또는 미래의 평화도 중요하지만, 오늘 현재 우리의 삶에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미루거나 게을리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교육에서도 상상하기, 공감하기, 용기내기가 중요하며 지금의 비평화적인 것들을 해소하기 위한 문화운동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