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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주택 증여 급등세가 말해주는 것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최근 20년 이상 거주하던 경기도 분당 아파트를 자녀에게 증여한 것을 두고 말이 많다. 장관 지명 직전 증여한 후, 그 집에서 보증금 3000만원, 월세 160만원에 임대해 살고 있으니 ‘꼼수 증여’라는 비판이다. 최 후보자는 한 번도 살지 않은 서울 송파구 잠실동 소재 아파트 한 채와 세종시 반곡동에 들어서는 아파트 분양권도 소유하고 있다. 고위 공직자로서 다주택자라는 비난을 피하고, 최근 강화된 보유세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증여라는 편법을 동원했다는 의혹이다. 

진짜 다른 사정이 있는 지 논외로 하더라도 최 후보자는 요즘 다주택자들 사이에 가장 흔한 ‘절세 비법’을 따랐다. 4월에 확정되는 공시가격 인상으로 인한 세부담 증가에 대비해 자녀에게 물려주는 방법이다.

증여는 요즘 다주택자들 사이에 꽤 흔한 거래 형태다. 값비싼 아파트가 몰려 있는 서울 강남권에선 매매보다 더 많다. 올 1월 서울 송파구에서 발생한 주택 거래 중 부모가 자식에게 아파트를 증여한 건수는 318건으로 같은 달 송파구에서 있었던 아파트 매매 건수(83건)의 세배 이상이다. 다른 강남권도 마찬가지다. 1월 서초구에서 아파트 매매는 65건, 증여는 83건으로 역시 증여가 매매보다 많았다. 강남구에선 매매는 89건, 증여는 80건으로 비슷했다.

서울 전체로도 1월 매매(1889건)와 증여(1511건)는 별로 차이가 크지 않다. 작년 1월 서울에서 아파트 매매는 9938건, 증여는 1133건 있었던 것과 크게 비교된다. 최근 매매는 급감하는데, 증여는 늘어나는 현상이 심화하면서 나타난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주택 거래에서 매매는 증여보다 수십배 이상 많다. 불특정 다수 간 집을 사고파는 매매가 친인척간 주로 발생하는 증여에 비해 많은 건 너무 당연한 현상이다. 그런데 요즘 매매는 ‘거래절벽’이라고 표현할 만큼 비정상적으로 위축된게 문제다. 지난 2월 월간 기준 6년 만에 가장 작은 규모라고 한다. 역대 2월 거래량 규모로는 가장 작다. 

지난해 9·13 부동산대책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대출규제가 강화돼 무주택자가 웬만큼 현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을 하는 건 불가능해 졌다. 현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세금 부담 때문에 추가로 집을 사는 건 어렵게 됐다.

서울에서 주택 거래가 급감한 건 팔려는 사람들과 사려는 사람들의 시각차가 커서다. 집주인은 더 싸게 팔 생각이 없고, 매수 희망자는 급매물만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현장 중개업소에 가면 매물이 별로 없다. 있다고 해도 생각만큼 싸지 않다. 강남구 도곡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최근 강남에서 몇억씩 싸게 거래됐다고 하는 것을 확인해 보면 특별한 사정이 있는 일부 사례에 불과하다”며 “집값이 정말로 떨어지려면 한번 싸게 거래가 된 이후 더 싼 게 나오면서, 급매물이 계속 쌓여야 하는데 지금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잠실 주공5단지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사고 싶다는 문의는 꾸준한데, 막상 매수 희망자들이 원하는 정도로 싼 건 없으니 거래가 안된다”고 했다. 

앞으로 주목해야 하는 건 아파트 세금이 확정되는 4월 말 이전 급매물이 얼마나 나올지다. 보유세 부담이 확정되기 전 처분하려는 다주택자가 늘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공시가격이 크게 오르고, 부동산 보유세 부담도 커질 것으로 예고된 상황이다. 급매물이 크게 늘어난다면 시장은 진짜 본격적인 하락세로 바뀔 수 있다. 

물론 현재까지 이런 전망은 기우인 듯하다. 다주택자들은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급하게 팔기보단 임대주택에 등록하거나 증여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서다. 지난해부터 매달 임대주택 등록건수와 증여는 역대 최대 수준으로 급등하고 있다. 

이런 현상엔 시사점이 많다. 다주택자들이 주택시장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집값이 실제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면 서둘러 팔 지, 임대주택으로 등록해서라도 계속 붙들고 있거나 자녀에 물려주는 방법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어떤 다주택자가 집값이 떨어질 게 뻔한 데 계속 가지고 있거나, 자녀에게 물려주겠는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최 장관 후보자는 주택시장에 대해 어떻게 전망할까. 그는 집값 안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건 공직자로서 할 수 있는 ‘당위’의 표현이다. 그는 실제로도 지속적인 집값 상승은 국민 경제에 좋지 않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장관 후보자가 아닌 개인으로서 최 후보자는 어떨까. 그건 그가 현실적으로 시장 판단을 하고 내린 경제적 행위를 보면 바로 드러난다. 혼란스러운 시장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부동산 참여자들에겐 어쩌면 이 점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박일한 소비자경제섹션 부동산팀장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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