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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남대문 시장과 코스닥
남대문 시장을 좋아한다. 딱히 무엇인가 사는 건 아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남대문과 집을 오가는 생업을 가지셨고, 난 등에 업혀 비가 올 때면 우산을 들고 반찬을 살 때면 봉지를 들고 어머니와 함께 남대문 골목을 쏘다녔다. 지금도 종종 남대문 시장에 간다. 하릴없이 남대문 거리를 걷다 보면, 괜히 기분이 좋다. 왁자지껄한 소리, 그 사이를 헤집고 좁은 골목길에 접어들면 질퍽한 물기와 돼지 삶는 냄새. 벌건 대낮에도 가게 문밖까지 울리는 술주정. 주인인지 손님인지 분간 안 되는 아주머니의 웃음소리. 혹은, 타박소리. 골목길을 나오면 그곳은 그야말로 삶의 격전지다. 세상만사 거래가 곳곳에서 펼쳐진다. 구경하다 보면 어느덧 내 손엔 양말 한 묶음 따위가 들려 있는 일이 다반사다.

한국거래소 한 관계자와의 최근 식사자리였다. 남대문 시장 얘기가 나왔다. 이런저런 추억담을 공유하다, 이런 얘기가 나왔다. “남대문 일대가 마지 자본시장 같다”는 거다.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명소. 남대문 시장과 그 옆의 신세계 백화점. 명품관까지. 남대문관광특구가 서울 대표 명소로 자리 잡기까지 그 어느 하나가 없어도 불가능했다는 것. 백화점을 들른 손님이 그 옆 남대문 시장도 구경하고, 남대문 시장에 온 외국인은 면세점까지 찾아가본다. 백화점이 비싸면 남대문 시장에서 쏠쏠한 양말 한 묶음을 살 수 있다. 시장에서 소유욕을 자극할 가방을 못 찾았다면, 한번 바로 옆 백화점을 찾아가보시라. 양말에서부터 명품 가방까지, 균형감 있는 밀집이 남대문 일대의 경쟁력이고, 한국 자본시장이 추구해야 할 미래상과 닮았다는 거다. 따져볼수록 절묘한 비유다.

남대문 시장은 백화점과 비교할 수 없는 고유의 재미가 있다. 에누리가 있고, 천태만상 물건이 있다. 가성비가 있고, 찾는 맛이 있다. 시장도 시장 나름의 룰이 있지만, 백화점과 동일시하면 곤란하다. 백화점의 환불 규정을 남대문 시장에서 들이밀거나, 왜 여긴 유모차 대여소가 없느냐고 상인에게 항의한다면 그저 서로 머쓱할 뿐이다.

정재송 신임 코스닥협회장이 지난 20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정 회장은 “정부나 당국의 지나친 규제가 코스닥 시장 전체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진입 문턱이 낮은 걸 제외하면 코스피와 차별성을 찾기 어렵다”고도 했다. 비유하면, 남대문 시장에 신세계 백화점과 똑같은 잣대를 내밀고 있다는 토로다. 다행히 최근 정부도 화답하는 모양새다. 청와대 경제보좌관에 벤처전문가인 주형철 한국벤처투자 대표를 임명하고, 비상장 벤처기업에는 차등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당정 차원에서 추진됐다. 한국거래소는 ▷업종별 상장 심사ㆍ관리 차별화 ▷주관사 역할 강화 및 성장사다리 체계 활성화 ▷특례상장 활성화 ▷미래 코스닥 대표기업 발굴 및 상장유치 등의 코스닥 활성화 방안도 내놓은 상태다.

그 어느 때보다 분위기는 좋다. 아니, 위기의식이 크다. 정부도 시장도 코스닥 시장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데에 그 어느 때보다 공감대가 단단해진 기류다. 이제 중요한 건 실행력이다. 남대문 시장도 생기 넘치고 그래서 신세계 백화점도 더 신바람 나는, 그런 자본시장을 기대한다. 

김상수 IB금융섹션 증권팀장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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