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현장에서] 엘리엇 어깃장 또…경영권 보호책이 먼저다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가 배당을 하더라도 유동성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의결권 자문사에 이어 2대 주주인 국민연금까지 현대차에 힘을 보탠 가운데 엘리엇의 추천 후보 선임 가능성에 대한 언급도 꾸준하다.

22일 예정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주총회에 앞서 여론전은 진행형이다. 앞서 엘리엇은 현대차에 보통주 1주당 2만1976억원(4조5000억원)으로 우선주 배당금을 포함한 총 5조8000억원의 배당 확대를 제안했다. 현대모비스에는 2조5000억원의 배당을 제안했다.

엘리엇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가 각각 21조원, 10조원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배당을 하더라도 재무제표상 초과 자본의 절반 이상이 유지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주주들의 표 행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의결권 자문사들은 일제히 엘리엇의 배당안에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 대규모 배당으로 연구개발(R&D)이나 공장 투자를 위한 자본요건 충족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현대차가 승기를 잡았다는 분석에도 주총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다. 배당 확대 외에도 사외이사 후보 선임과 이사회 정원 증원 등의 안건이 이슈로 떠오를 수 있어서다. 엘리엇 역시 의결권을 확보하기 위한 물밑 작업을 꾸준히 진행 중이다.

엘리엇의 어깃장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해 지주사를 세우라고 요구했다. 현대차 자사주 소각과 순이익의 40~50% 배당도 덧붙였다. 이보다 앞선 2015년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하기도 했다. 이슈가 있는 기업의 주식을 사들이고 경영권을 흔드는 방식으로 공격하는 습성은 여전하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글로벌 헤지펀드는 2013년 상반기 275개에서 지난해 상반기 524개로 약 90% 급증했다. 2016년 시가총액 20억 달러(한화 약 2조원) 이상 기업 비중은 33%에서 2017년 36%로 높아졌다.

기업 본연의 가치를 현실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힌 엘리엇의 주장과 달리 행동주의펀드가 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요구가 점철되지 않으면 소송 등 극단적인 공격으로 이뤄지는 사례도 빈번하다.

재계 안팎에서 경영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강력한 경영권 방어수단이 도입되지 않는 한 매년 열리는 주총에서 해외투기세력의 경영권 흔들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선진국에선 기존 주주가 시가보다 저렴하게 지분을 매수하는 ‘포이즌필’이나 대주주 주식 등 일부 주식에 의결권을 더 부여하는 ‘차등의결권’ 등을 도입하고 있다. 적대적인 외국계 헤지펀드의 경영 간섭을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들이다.

반면 국내에선 이런 제도가 전무하다.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된 이른바 ‘3% 룰’이 기업의 발목을 붙잡은 것도 모자라 계류 중인 상법개정안엔 다중대표소송제와 집중투표제 등 외부 세력이 경영권에 개입할 수 있는 독소조항이 들어있다.

투기세력의 진입은 노사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행동주의펀드의 특성상 고용 창출 등 대승적인 협력이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엘리엇이 ‘노조 리스크’를 경영 문제로 거론한 것도 이런 이유다. 내부 균열을 야기해 주주들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노조 역시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먹튀 배당’이라는 표현을 쓰며 투기자본의 비정상적인 요구를 거부할 것을 촉구한 것도, 2019년 임단협에서 우리사주 매입 선택제도 도입 등의 검토를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에서 경영권 보호장치를 담보할 수 있을까. 벤처기업에 차등의결권 도입을 검토하는 안이 국회에서 거론됐지만, 대기업까지 확산할지는 미지수다. 대기업을 향한 정부의 지배구조 개편 압박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체질 개선’과 ‘전횡 방지’는 결이 다르다. 기업이 투자와 고용 등 본업보다 경영권 방어에 자금과 인력을 낭비할수록 성장은 멀어진다.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더라도 투기세력의 어깃장은 계속될 것이 자명하다. 근본적인 방안이 논의돼야 하는 이유다.

업계의 시선은 현대차그룹 주총으로 쏠린다. 고액 배당과 엘리엇 추천 사외이사 선임 안건의 통과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한다. 기본적인 안전장치가 없는 한 언제든지 반전의 우려는 남아 있다.

정찬수 산업섹션 자동차팀 기자 andy@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