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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나 보이스피싱 당한 거 같아”
보이스피싱 피해신고 어디에 하면 돼?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성원님. 너 보이스피싱 몰라? 성원님 죄송합니다. 이 목소리가 지금 들려드릴 수 있는 유일한 목소리예요. 이런 멍청이. 별로 유쾌한 경험은 아니네요. 나 보이스피싱에 당한 거 같아. ‘나 보이스피싱에 당한 거 같아’에 대해 웹에서 제가 찾은 결과입니다.

뒷맛이 개운치 않은 대화였다. 소문과 달리 허를 찌르는 답변은 없었다. 애플 아이폰의 음성인식 서비스 ‘시리(siri)’는 보이스피싱에 무지했다. 절박함이 덜한 목소리 연기가 문제였을까. 구제책을 제시하긴커녕 농(弄)으로 넘기는 것 같았다. 징검다리 건너듯 띄엄띄엄인 음성은 짜증만 남겼다. 시리가 한국어를 이해하고 말하기 시작한 건 2012년 6월. 7년이 흘렀는데 보이스피싱 데이터가 쌓이지 않은 셈이다. 기술진보는 삶을 송두리째 바꿀 기세이지만, 아직 닿지 않은 음습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역대 최고’란 수식어는 긴장감을 부른다. 4400억원. 작년 한 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이다. 2017년보다 2009억원(82.7%)이나 늘었다. 하루 평균 134명이 총 12억2000만원을 날렸다. 한 사람당 900만원 넘는 돈을 허망하게 잃었다.

고령층만 당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2030세대는 2016ㆍ2107년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637억ㆍ768억여원으로 4050세대에 이어 2위였다. 작년 들어서야 60대 이상 피해자가 많아져 3위로 떨어졌지만 피해금액은 915억원으로 불었다. 심리적으로 약한 고리만 파고든다. 한 푼이 아쉽다면 모두 타깃이다.

‘오죽 어리숙하면 당하겠나’라고 치부하다 된통 걸린다. 수법 진화가 인공지능(AI) 뺨친다. ‘그 놈 목소리’에 속지 않기 위해 금융사에 확인하려 해도 그 목소리가 전화를 가로채기 해 믿음을 주곤 돈을 뽑아 간다.

털리지 않으려면 대비해야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미세먼지 낀 공기처럼 삶의 일부로 받아 들이려는 분위기도 있다. 국민ㆍ신한ㆍ기업ㆍ하나ㆍ우리은행 등은 고객 1만명당 사기이용계좌 수가 2~3개에 달한다. 기업은행 빼고 전부 숫자가 늘고 있다. 애초 계좌 개설 때부터 거래목적을 확인하고 기존 계좌에서 의심거래가 있는지 꼼꼼하게 따져야 하는데 은행이 번거로워한다. 미국만해도 대포통장 생기는 걸 막으려고 계좌개설 인터뷰만 30분 가량 진행한다.

국회엔 대포통장을 거래하다 걸리면 징역형을 3년 이하에서 5년 이하로 강화하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대포통장 조직에 범죄단체죄를 적용해 범죄수익을 환수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여야가 진도를 빼는 속도를 볼 때 법안이 언제 통과할진 불투명하다.

10여년 전 서울지방경찰청 기자실에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번지수 잘못 찾은 보이스피싱 시도였다. 한 경사가 받더니 여기가 어딘줄 알고 걸었냐며 육두문자를 쏘아붙이고 끊었다. AI가 사람 일자리를 위협하는 세상이 왔는데, 전화사기에 걸려 돈 잃은 탄식이 더 깊고 넓어지고 있다. 보이스피싱만 잡아도 정부가 강조하는 신뢰금융ㆍ포용금융이 된다. 

홍성원 IB금융섹션 금융팀 팀장 ho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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