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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스토리] 인도네시아 ‘황금알 VR시장’ 뚫고 있는 사나이, 김홍주
-PD에서 한류 VR콘텐츠 인생 사는 김홍주 스토리
-아프리카서 얻은 모험심은 도전하는 인생의 밀알
-인도네시아 VR시장 뚫고 ‘제2의 황금기’ 삶 개척


김홍주 토마토 프로덕션 대표. PD인생에서 VR콘텐츠 제작업체 대표로 변신한 그는 아프리카에서 쌓은모험심이 자신의 도전하는 삶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킬리만자로에서, 나이지리아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그는 지금도 그때의 절실함이라면 못할 사업이 없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뛴다고 했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 지난 2005년, 킬리만자로 능선. 30대 중반의 사내 하나가 능선을 걷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위태로워 보였다. 쓰러질듯, 쓰러질듯 하다가도 사내는 몸을 곧추세웠고, 또다시 묵묵히 길을 걸었다. 사내는 우연한 기회에 용인외고 학생들과 킬리만자로에 오르는 일정을 소화하는 중이었다. 학생들과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에서 야영을 하고 케냐에서 봉사활동을 한 후 탄자니아 응고릉고로를 거쳐 킬리만자로에 오르는 길이었다. 사업 실패와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겹쳤기 때문일까. 해발 4700m 키보 산장에 머무를 때 촬영을 진행했던 사내에겐 고산병이 찾아왔고, 몸은 축 늘어졌다. 5685m 길만스 포인트를 지나면서는 혼자 남아야 했다. 뒤에 남겨진 사내에겐 가이드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킬리만자로 능선을 혼자 하염없이 걸어야 했다. 하염없이 눈은 쏟아졌고, 발길을 계속 붙잡았지만 사내는 5895m 정상까지 눈을 헤치며 걸어나가야 했다. 자칫 길이라도 잃으면 여기서 죽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자기 하나 때문에 전체 일정이 틀어지는 것은 정말 싫었다. 젖먹던 힘까지 냈다. 근데 마음 뿐. 아무리 그래도 체력은 바닥 났다. 죽을 것 같은 고통…. 그대로 드러누웠다. 그냥 이대로 누운채 계속 있고 싶다는 유혹이 일었다. 온갖 상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 사업 초기 뭉쳤던 친구들이 죄다 빠져나간 것에 대한 아쉬움, 연로한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움…. 눈밭에서 쑥 꺼져 땅속으로 빠져들어갈 것 같은 죽음과도 같은 침잠이 일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지금까지 믿고 따라와준 아내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이대로 죽을 순 없지. 다시 일어섰다. 어떻게 간지모르겠다. 비몽사몽 간에 정상에 엉금엉금 기어 도착했다. 남은 촬영을 마치고 나니 고산병은 거짓말처럼 금세 나았다. 아니, 책임감이 잠시 아픔을 잊게 해줬는지 모른다. 죽다 살아난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입으로 계속 되뇌었다. “그래, 인생 뭐 있어? 다시 시작하는거야.”

“지금도 사업 때문에 머리가 복잡하거나 힘들면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를 떠올리곤 합니다. 한치 앞도 알 수 없지만, 내가 가는 방향이 맞다면 한발 한발 내딛으면 언젠가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죠. 그러고보면 아프리카는 제 인생 모험에 있어서 든든한 지원군인 셈입니다.”

김홍주 토마토 프로덕션 대표(52)가 가끔씩 회고하는 14년 전의 스토리다. 지금도 사업이 난관에 봉착하면 그때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낸다. 그러면 왠지 모르게 힘이 솟고, 위기극복의 지혜도 함께 얻는단다. ‘죽기 아니면 살기’인데, 죽음을 불사한 그때의 기억 앞에선 어떤 고난도 인간의 의지로 뚫지 못할게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란다.

김 대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인 VR(virtual reality)콘텐츠를 앞세워 해외진출에 성공한 인물로 꼽힌다. 특히 성장 잠재력이 큰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큰 성과를 냈고, 여세를 몰아 한류 VR콘텐츠를 전세계로 뻗어나가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를 최근 상암동 토마토 프로덕션에서 만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눈은 ‘아프리카’에 쏠려 있었다.

▶아프리카는 내 도전 인생의 뿌리=김 대표의 어릴적 꿈은 과학자였다. 그래서 재료공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과학자가 되기엔 그의 내면엔 늘 ‘방랑’의 꿈이 존재했다. 대학에서 극예술에 매료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일단 큰 도시, 서울로 오고 싶었어요. 착한 아들이긴 했지만, 부모님 곁을 떠나 맘대로 해보고 싶었어요.”

전공을 따라 만도기계에 입사했지만, ‘끼’를 버릴 순 없었다. ‘다큐멘터리’에 꽂혔다. SBS에서 PD생할을 시작했다.

“첫 담당이 ‘생방송 모닝와이드’였는데, 덕분에 전국 구석구석에 숨겨진 순박한 사람 향기와 아름다운 자연을 원없이 경험했어요. 같은 하늘 아래에도 이렇듯 다양한 인생이 각기 다른 색채로 살아가는 모습이 흥미로웠어요.”

세계로 눈을 돌린 것은 더 많은 사람 냄새를 맡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아프리카와 인연을 맺은 것은 이 때다. 1999년, 아프리카를 무대로 ‘기아체험 24시간’을 제작하면서 기아, 에이즈(AIDS), 소년병 문제를 눈으로 목격했고, 그들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봤다.

“이들을 위해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묘한 책임감이 들더라구요. 모금한 돈으로 학교가 만들어지고, 병원에 지원하고, 우물을 파는 등 작지만 그곳에 새로운 희망을 전달하고 이로 인해 변해가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거창하지만 인류애와 사회적 가치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얼핏 본 것을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던 때였다. 어느 것을 해도 성공할 수 있겠다 싶었다. 무엇보다도 젊었고, 무서울 게 없던 시절이었다. 2002년 동료 PD 세명과 함께 동업을 시작했다. 지금의 토마토 프로덕션이다.

“정말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인류를 위한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그런 것 말이죠.”

다큐에 천착했다. 아프리카, 남미 등을 방문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예멘 등 아랍권 국가들, 아프리카 정글과 보르네오 정글 등의 영장류(고릴라ㆍ침팬지ㆍ오랑우탄 등)를 테마로 TV동물농장과 다큐멘터리 등을 제작했다. 험지를 돌아다니다보니 고통도 작지 않았지만, 고행을 자처했다. 평범한 다큐는 싫었다.

킬리만자로에서 처럼 죽을 고비도 몇번 넘겼다. “2002년 월드컵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나이지리아를 방문했을 때 말라리아에 걸렸어요. 40도의 현지병으로 인해 고열과 설사 등을 반복했는데, 의사가 계속 촬영을 진행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더군요.”

그래도 악으로 버텼다. 포기하면 현지를 찍을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카메룬으로 떠났고, 다행히 그곳 현지에서의 촬영은 무사히 마쳤다. 자원이 풍부하고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는 카메룬에서의 촬영 작업은 그래서 성취감이 컸다.

하지만 이같은 아프리카 촬영 작업은 성취감이 남달랐던 소중한 기억이었지만, 이문이 남는 것은 없었다. 제작환경이 열악한 프로덕션의 경영난을 ‘성취감’으로 커버할 순 없었다. 아웃소싱 사업은 늘 적자였고, 동업자들은 하나둘씩 떠났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포기할 수 없었다. 창업초기 스스로 했던 굳은 맹세를 버릴 순 없었다. ‘죽으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홀로서기에 도전했다.

“파산선고를 하고 경력 PD로 돌아가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죠. 그런데 그러고 싶지 않더라구요. 이 정도로 물러서면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하나 밖에 없는 딸에게 ‘실패한 아빠’라는 낙인을 찍기 정말 싫었어요.”

▶인도네시아, VR 시장에서 삶의 의미를 찾다=심기일전한 김 대표는 이후 ‘한우물’만 팠다.

“중용에 보면 지성무식(至誠無息)이란 말이 있어요. ‘지극한 정성은 단절이 없다’는 뜻인데 모든 일에 지극정성으로 대하면 결과는 늘 이롭다는 뜻입니다. 그걸 믿고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기회는 왔다. 2014년 페이스북에서 오큘러스(Oculus)라는 머리 착용 디스플레이(HMD) 제작 벤처업체를 20억달러에 인수하면서 전세계에 VR 디바이스 기업 창업 붐이 일었다. 이거다 싶었다. 김 대표는 여기서 희망을 봤다. 당시 MBC에서는 자체 IP를 활용한 VR콘텐츠를 제작해 MBC 월드(World)라는 테마파크를 운영할 계획을 세웠고, 김 대표 회사에 제작 의뢰가 들어왔다. 김 대표는 이에 호러(Horror) VR 콘텐츠를 제작했고 VR콘텐츠 사장에 진입하게 됐다.

“정말 기회가 됐습니다. 내공을 쌓은 후 ‘4월愛’라는 연작 VR 드라마를 국내 최초로 기획ㆍ제작했고, EBS의 IP인 번개맨을 확보해 시네마틱 VR인 번개맨을 만들었고, 이후 VR 다큐, VR 예능 등 VR 영역을 확장시키는 작업을 계속하게 됐어요.”

여기까지 였으면 김 대표 인생은 그럭저럭 만족할만한 VR콘텐츠 제작업체 대표였을 것이다. 자신감을 얻은 김 대표는 동남아 시장에 눈을 돌렸다. 해외에 팝업 스토어를 운영한 경험을 살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1호 로케이션 사업장을 구축한 것이다.

김 대표는 지난 2018년 11월30일을 잊지 못한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센트럴파크몰 내 네오소호몰(neo soho mall)에 VR 테마파크인 코비(KOVEEㆍKorea VR Entertainment & Edutech)를 오픈한 것이다. KOVEE는 곧 인도네시아 주요 쇼핑몰에서 한국의 대표 VR콘텐츠와 K-컬처를 즐길수 있는 유명 복합 문화공간으로 떠올랐다. 센트럴파크몰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수퍼몰로 방문객이 월 290만명에 달하며, 연간 3400만명이 다녀가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한류 VR콘텐츠는 인도네시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콘텐츠이자, 명물이 됐다.

“인도네시아 사람들로부터 반응이 폭발적이라 저도 놀랐습니다. 우리의 VR 콘텐츠에 대해 전혀 거부감 없이 다가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재 일주일에 4000명 정도가 방문하고 있으며, 일주일에 신규로 가입하는 이가 500명 정도 되는데, 이건 작지 않은 성과입니다.”

물론 이는 VR세상을 꿈꾸고 있는 김 대표로선 출발점이란다. 김 대표가 VR에 꽂힌 것은 지금까지의 2D영상은 연출자나 카메라에 의해 기록되면서도 임의로 조작ㆍ가공할 수 있는 반면에 VR은 어떤 의도나 왜곡없이 현장을 그대로 기록해 내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살아있는 콘텐츠, 사람 냄새 나는 콘텐츠란다. 그래서 김 대표는 죽을때까지 살아있는, 실감나는 영상콘텐츠를 만들고 싶단다.

“대박은 아니고요. 일단 안착이라고 봐야죠.”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성공했으니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김 대표의 답이다.

그러면서 몇마디 잇는다. “인도네시아 KOVEE 플랫폼을 3~4년 안에 안착시킨 이후 동남아를 거쳐 인도차이나 반도까지 시장을 확대하고 싶습니다. 다음은요? 기회가 된다면 내 삶에 용기를 준 아프리카에 저만의 VR콘텐츠로 진출하고 싶어요.”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한마디 하고 싶단다. 후배들을 위한 메시지다.

“VR은 세계적인 기업들이 미래의 가치를 보고 투자 중입니다. 그런데 대자본들은 주로 하드웨어에 투자하죠.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대자본이 모든 콘텐츠를 만들 수는 없거든요. 바로 이곳이 도전정신이 있는 청년들이 뛰어들 수 있는 틈새입니다. 콘텐츠에 대한 꿈이 있는 후배들,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이 되고 싶은 후배들에게 용기를 갖고 같은 길을 걷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시간이 되면 후배들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물려줘야죠.”

ysk@heraldcorp.com

▶김홍주 토마토 프로덕션 대표 프로필

-1968년 전주 출생

-전북대 재료공학과(학사)

-광운대 스마트 융합대학원 3D 홀로그램학과(석사)

-SBS, MBC 교양국 PD

-(현) 토마토 프로덕션 대표이사

-(현) MBC ‘생방송 오늘아침’, ‘실화탐사대’ㆍSBS ‘맨인 블랙박스’ 제작 중

-2015년 VRㆍAR 콘텐츠(3D VR 드라마 시크릿 로맨스, 번개맨, 예능 VR 엉터리 여행단 등 제작)

-201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한류 복합 VR 테마파크 KOVEE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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