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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탄핵을 넘어서기 위해 탄핵을 인정하자
3월 10일은 탄핵 2주년이었다. 탄핵 이후로 사실상의 민주당 독주가 시작됐고 야권은 지리멸렬했지만 최근 그 독주에 제동이 걸린 것은 굳이 여론조사 수치들을 풀어놓지 않아도 주지의 사실이다. 야권은 그에 고무돼 총선에서의 승리까지도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수 야권에 지금 총선승리에 필요한 ‘보수집권계획’이라는 것이 있는지 묻고 싶다. 진보진영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해 총선에서 통한의 패배를 당하고 이듬해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서거까지 겪으면서 지금의 탄핵충격 못지않은 트라우마 속에 있었다. 자신을 폐족이라 부르며 사라질 것처럼 보였던 진보진영은 2010년을 넘어서면서 점진적으로 회복하기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조국 민정수석은 2010년에 ‘진보집권계획’이라는 책을 낸다. 수차례에 걸친 오연호 기자와의 대담 속에서 그는 사회적 관점에서 진보집권의 당위성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정치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한계를 짚어냈다. 또한 당시 진보 대선주자들의 한계점을 상술하면서 그를 뛰어넘기 위한 연대 및 지형 설정의 청사진을 그려냈다.

지금 와서 보면 그 책에서의 유시민, 정동영, 이정희, 안희정, 원희룡 등의 인사에 대한 조국 수석의 평가와 정치상황에 대한 인식이 모두 옳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2010년에 어떤 서울대 법대 교수는 완성도 있는 진보집권계획을 그리고 있었다. 그 책을 읽고 친필로 독후감을 써서 보내 호감을 표시하며 영입에 나섰던 사람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다.

이제는 좁게는 보수, 넓게는 야권도 전술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전략적으로 막힌 부분을 뚫어내는 집권계획이 필요하다. 우선 문재인 정부의 최대 버팀목은 탄핵으로 생긴 상대적인 도덕성의 우위이다. 이것은 캡틴 아메리카의 비브라늄 방패와도 같은 것이라 어지간해서는 뚫리지 않는다. 소득주도성장의 궤멸적 실패와 함께 경제적 정책능력은 부정당했고, 비핵화 협상의 난항으로 안보정책도 의심을 받고 있음에도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대에서 더 내려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지금 야권에서는 바른미래당과 자유한국당을 막론하고 탄핵을 넘어서자는 두루뭉술한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탄핵을 넘어선다는 의미가 탄핵에 대한 찬반을 놓고 쌓인 서로 앙금을 술 한잔에 덮고 가는 모양새가 돼서는 안된다. 보수는 지금까지 시대상에 맞게 변화하지 못했음을 겸허하게 반성하고 이 새로운 시대의 적응자가 되어야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탄핵을 인정하고 탄핵으로 국민이 정치권에 요구한 기준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역설적으로 태극기 부대와 강경보수의 탄핵부정으로 여권이 쉽게 도덕적 우위를 유지해 왔다. 언뜻 보면 강경보수가 하는 주장들이 힘이 있어 보일 수 있지만, 논리적으로는 매우 빈약하며 상환청구력이 없다. 예를 들어 그들은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를 이용해 문재인 정부의 비도덕을 조롱하고 공격한다. 하지만 탄핵을 부정하고 박근혜 정부의 부정행위에 대해 관대한 사람들이 외치는 ‘내로남불’이라는 용어는 언제나 ‘로맨스’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가 감시 대상 명단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인사를 배제한 것을 옹호하는 사람은 문재인 정부가 행하는 감시 대상 명단도 로맨스라는 주장을 하는 셈이다.

박근혜 정부가 했던 것이 로맨스라면 문재인 정부가 유사한 행위를 한다고 해도 같이 로맨스를 했다는 취지 이상으로 비판하기 어렵다. 이게 태극기 부대와 강경보수가 가진 근본적인 확장력의 한계이다.

대통령이 재단을 만들고자 총수들을 압박하지 말아야 했다는 주장을 보수가 받아들여야 문재인 대통령이 총수들을 불러모아 반강제로 대북사업을 종용하는 행위의 부적절성을 주장할 수 있고, 문체부에서 감시 대상 명단을 만들어 성향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막은 것이 부적절했다고 인정할 때 환경부 김은경 장관이 보수성향의 인사들에 대해 사퇴압박을 넣은 것이 부당하다는 주장을 강하게 펼칠 수 있다. 박관천 경정과 조응천 비서관의 입을 막고자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공격했던 행위가 매우 집요하면서도 부적절했음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김태우 수사관의 용기있는 내부 고발에 대해 가해지는 인신공격과 탄압에 맞설 수 있고 더 많은 용기있는 제보자들이 나설 수 있다.

대통령 주변에서 진실한 사람들이라고 자처하며 호가호위하던 일부 친박 인사들을 이제 정계에서 퇴출해야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위세를 업고 성창호 판사를 협박하고 야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대해 대통령의 심기 경호를 위해 물리적으로 막아 세우려고 하는 ‘민주당의 진실한 사람들’을 심판대에 세울 수 있다.

보수집권 플랜의 첫 챕터는 탄핵인정이다. 총선을 1년을 앞두고, 강화된 도덕적 기준을 보수가 스스로 받아들이자. 탄핵에 대한 인정은 지금까지는 보수 야권에 가장 아픈 지점이었지만, 받아들이는 순간 이제는 가장 강한 무기가 될 것이다.

반대로 이 첫 단추를 끼우지 못하면 문재인 정부의 비도덕성을 비판할 수단을 모두 잃게 된다. 당파성이 약한 중도적 유권자 처지에서 봤을 때 같은 사안에 대해서 박근혜 정부는 로맨스를 했고 문재인 정부는 불륜을 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소구력없는 내로남불이 아니겠나.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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