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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속도로에 오토바이’…은행권 ‘결제망 개방’ 속내
수조원 들인 금융 인프라
핀테크업체 저가에 올라타
보안 등 운영·유지 부담 커져



‘민자 고속도로를 오토바이가 아주 싼 값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금융당국이 은행들이 수 조원을 들여 깔아놓은 금융결제망을 핀테크 업체에 전면개방하기로 하면서 나오는 반응이다. 금융지주 회장들은 최종구 금융위원장 앞에서는 “공감한다”고 답했지만 속으로는 냉가슴을 앓는 모습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5일 지급결제망 API를 확대ㆍ개편해 전 금융권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데이터 활용을 위한 API 체계도 별도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핀테크 업체들도 은행 결제망을 이용할 수 있고, 지급 결제 과정 중 특정 서비스만 대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핀테크 탄생도 가능해졌다. 망 이용료도 기존의 10분의 1수준으로 낮아진다.

은행들의 공식 반응은 “혁신안에 공감하고, 동참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속칭 ‘멘붕(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API개방을 제안한 금융혁신기획단은 지난해부터 은행권과 의견을 조율해왔다고 했지만, ‘지급결제망 개방’은 지난주에야 은행권에 ‘통보’ 됐다. 은행 관계자들은 비밀리에 긴급 회의를 소집할 정도로 위기감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사의 결제망은 은행업 면허의 핵심이다. 결제는 보안, 속도, 정확성이 중요하다보니 은행 책임 하에 수십년간 수조원을 들여 망을 관리해왔다. 그 길을 핀테크 업체들이 저가에 ‘무임승차’ 하는 식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단가가 내려가 거래 건수가 많아지면서 시장이 활성화 된다면 은행들도 수수료 수익이 늘겠지만 일정 규모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은행이 비용을 들여 유지해야 하는 부담만 커질 것”이라며 “사실상 (핀테크 양성을 위한)사회공헌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망 운영 과정의 책임은 은행이 지면서 과실은 핀테크 업체들도 누린다는 점에서 ‘체리피커’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관계자는 “은행들이 생산적 금융, 포용적 금융, 채용에 적극적인 배경은 인가를 받는 기업이다 보니 공공기관에 준하는 책임을 지겠다는 측면”이라며 “핀테크 업체들에도 사회적 책임을 요구할 수 있겠나. 결국 체리피커 되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기습적인 혁신안 발표에 대해 불만이 팽배하지만, ‘체리피커’ 등 부작용 완화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 입도 못 떼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딴지’를 거는 게 부담이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혁신안 세부 내용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의견 개진 방안을 고심중이다. 

도현정 기자/kate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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