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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시정부 주도한 소론, 사상적 뿌리엔 아나키즘이…
이회영·김대락·이상룡·홍승헌·정원하…
일제 항거 집단망명 대부분 소론 사대부
인간의 선천적 차별 인정안하는 세계관
한세기 건너 日우익 목소리 높이는 현실…
한국독립전쟁사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


“ 한국 독립전쟁사를 재조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는 단순히 한국 독립전쟁사에 대한 재조명일 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는 물론 나아가 동아시아 전체의 현 상황에 대한 거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독립전쟁사의 재조명’에서) 사진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3.1절 기념식 (1921년)

매천 황현(1855~1910)은 국권이 일본에 넘어가자 ‘절명시’를 남기고 1910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매천은 사대부들이 종사를 망쳐놓고도 자책할 줄 모른다며 통탄했다. 조선을 이끌어온 사대부들은 망국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이 분야는 지금까지 연구가 이뤄진 적이 없다.

역사학자 이덕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한국독립전쟁사의 재조명’(만권당)에서 당시 양반 집단의 두 기류에 주목한다.

하나는 일제의 대한제국 점령에 적극 가담하고 일제로 부터 작위를 받은 이들이다. 작위를 받은 이들 중 소속 당파를 알 수 있는 인물은 64명 정도로 북인 2명, 소론 6명, 노론 56명으로 대다수가 노론이다. 저자는 인조반정 이래 집권당이었던 서인·노론이 집단적으로 매국에 적극 가담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며, 이들은 일제의 점령을 종주국이었던 중국으로부터 일본으로 옮기는 정도로 인식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대조적인 다른 집단은 일제에 항거해 집단망명을 택한 사대부들이다. 서울의 우당 이회영, 안동의 백하 김대락, 석주 이상룡, 충청도 진천의 홍승헌·정원하, 강화도의 이건승 등이다. 나라를 찾겠다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이들은 대부분 소론 계열이다. 이 집단 망명을 주도한 이는 우당 이회영이었다. 이회영과 이상룡 등은 전 재산을 털어 만주에 경학사, 부민단 등 민단자치조직을 만들고 신흥무관학교를 열었다. 독립전쟁사의 서막을 연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한발 들어가 전국적·조직적으로 이뤄진 이 집단 망명자들의 사상적 배경을 탐색해 나간다. 그 중심에 양명학이 있다. 홍승헌과 정원하, 이건승은 양명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망명일기’에서 ‘왕양명실기’를 읽은 소감을 적어놓은 석주 이상룡 역시 양명학에 깊이 공감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소론이라는 당파적 동일성과 양명학이라는 학문적 동질성으로 연결돼 있었다.

조선의 주자학자들에 의해 이단으로 취급받은 양명학은 사대부의 계급적 우월을 절대시하는 성리학과 달리 인간의 선천적 차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세계관은 곧 천지만물을 하나로 보는 대동사회 건설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저자는 공화주의와 아나키즘과 만난다고 본다.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불리는 명문 가문 출신으로 아나키스트가 된 이회영에게도 양명학의 연결고리가 있다. 양명학이 이회영이 속한 소론 가문의 전습 사상이었다는 점, 양명학을 공부한 이상설과 함께 공부했으며 평생지기였다는 점, 강화학파들과 사전 계획 끝에 동시에 망명했다는 점 등다. 저자는 아나키즘 이론이 양명학의 대동사회론과 비슷한 점이 많아 이회영이 아나키즘을 받아들였을 것으로 본다.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이회영은 고종의 망명을 추진하기도 했다. 고종의 갑작스런 승하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그가 고종의 복위나 조선왕조의 복벽을 시도한 건 아니란 평가다. 고종을 통해 독립을 세계적인 정치문제로 제기하고 한편으론 고종을 따르는 양반사대부들로부터 군자금을 얻어내려는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회영과 함께 집단 망명을 한 석주 이상룡은 192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내각책임제 책임총리였던 셈이다. 그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군주제를 전면부인하고 공화제를 주장했는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1919년 공화제를 주창한 것에는 이상룡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저자는 평가한다. 저자는 특히 그가 이끈 대한협회 안동지회와 경학사 등 단체와 사상에 아나키즘적 요소가 적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집단 망명가들이 전 생애를 걸고 독립전쟁에 나선 사상적 배경을 동양의 전통사상에서 찾았다는 데 이 책의 새로움이 있다. 특히 전통적 사상인 양명학이 독립운동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밝힌다. 독립운동가들은 양명학의 사해동포주의에서 공화주의의 근거를 찾았고 이런 사상으로 자치조직인 경학사, 부민단 등을 운영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제를 채택한 것은 이 연장선상에 있다.

저자는 왜 지금 다시 한국 독립전쟁사에 주목해야 하는지, 앞 장에 길게 썼다. 한국은 한 세기 전처럼 정한론을 주장하는 일본 우익들을 다시 맞닥뜨린 처지다. 미국의 반공정책에 따라 일본 전범 출신들이 부활, 세력을 확장하면서 일본 우익은 갈수록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범 출신들이 세운 사사카와 재단 같은 극우 재단은 ‘남경 대학살은 없었다’ ‘종군위안부는 자발적이었다’ ‘독도는 일본 땅이다’등의 망언들을 학술의 이름으로 조직적으로 유포하고 있다. 또한 한국인 학자들과 대학원생들을 지원, 친일 한국인 역사학자들을 배출해냈다. 바로 ‘가야는 임나다’ ‘나주 반남 고분군은 5세기경 일본인들이 건너와서 만든 것이다’ 등 폐기된 제국주의 역사학이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게 바로 그 배경이란 얘기다.

책은 여순 감독에서 순국한 안중근, 이회영,신채호의 사상을 통해 현재 위협받는 동아시아 평화체제의 나아갈 방향도 짚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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