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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김준형 의사 칼럼니스트] 바보의사가 남긴 희망의 처방전
유난히 다정하고 착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마음과 가슴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어 했다. 소년은 열심히 공부했고 의과대학을 졸업해서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항상 성실했기에 실력을 인정받았고 의과대학 교수가 되어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시련이 닥쳤다. 어느 날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파왔다. 디스크였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누워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항상 왕성하게 활동했던 그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자 심한 무력감이 찾아 왔다. 우울증이 시작된 것이다. 고통은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그는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고통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막상 고통을 받아들이자 우리 삶에는 고통 이외에도 많은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삶에는 희망과 행복도 있었다. 그렇게 그는 우울증을 극복했다. 그리고 환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정신과 환자들이 극심한 마음의 고통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도 시달려야 하는 현실에 가슴 아파했다. 그는 이런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했다. 환자를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의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2018년 마지막 날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난 고(故) 임세원 교수의 이야기다.

세상은 각박해져 간다. 아무도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기에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보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인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에 툭하면 ‘묻지마 폭행’사건이 터지고 남들보다 조금만 유리한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갑질이 시작된다.

이런 세상에서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은 바보다. 세상은 착한 사람을 존경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만만한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착한 사람을 보호하려고 하기 보다는 이용하려고만 한다.

2018년 12월 31일, 외래 진료가 이미 끝난 시간에 어느 환자가 임 교수를 찾아왔다. 다음에 다시 오라고 하고 돌려보낼 수도 있었지만 사명감이 투철한 임 교수는 진료를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환자가 흉기를 꺼내 들었다. 임 교수는 급히 옆방으로 피했다. 그러나 방안에 숨어있지 않고 밖으로 나와 “도망쳐라”고 소리쳐 간호사를 대피 시켰다. 하지만 자신은 미처 달아나지 못하고 화를 당한 것이다.

만약 임 교수가 자신이 편한 것만 생각하고 환자를 돌려보냈다면 그런 불행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피한 방에서 숨죽이고 숨어 있었다면 자신의 목숨만은 보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임 교수는 바보다. 환자를 위한 헌신적인 삶을 살다가 오히려 환자의 손에 목숨을 잃은 임 교수는 분명 ‘바보 의사’다.

이 뿐이 아니다. 임 교수의 유족도 그에 못지않다. 유족들은 조의금으로 받은 1억원을 대한정신건강재단에 기부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도움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고인의 뜻이라면서 말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님, 남편을 잃은 부인, 아버지를 잃은 자녀들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그분들의 마음이 어찌 슬프지 않았겠으며 그분들의 눈에 어찌 세상이 원망스럽게 보이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유족들은 증오보다는 사랑을, 징벌보다는 용서를 선택했다. 이런 바보의사와 그의 유족들을 보면서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임 교수와 유족들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우리 가슴에 진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 메시지는 ‘아무리 두렵고 고통스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증오를 버리고 사랑과 용서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바보 의사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희망의 처방전’일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희망에 의해 구원될 것이다’라는 고인의 말처럼 세상 사람들이 모두 희망 속에서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유족들의 바람처럼 편견 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세상 모든 분께 우리의 바보의사를 오래 오래 기억해 주시도록 간절히 부탁드린다.

김준형 의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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