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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한 베스트셀러의 자서전
불과 몇 달 사이에 4쇄가 인쇄되고 세월과 함께 증세를 거듭한 한 ‘베스트셀러’가 있었다. 이 책은 처음에 열일곱 살의 젊은 남자에게 팔려간다. 주인은 두 달 넘게 손에서 놓지 않고 줄을 치며 읽었고, 중요한 책들과 함께 응접실에 꽂아둔다. 주인의 입대로 상자 속에서 보낸 시간을 포함해서 결혼 후까지 쭉 39년간을 함께 지낸다. 주인이 죽은 후, 아내에 의해 책은 고물상에 팔려간다. 낯설고 전위적인 책들을 좋아하는 두 번째 주인과 한동안 함께 지내다가, 다시 팔려 세 번째 시나리오 작가를 만나지만 컬러텔레비전 등 현대문명에 점차 밀려 관심에서 벗어난다. 결국 다시 고서점에 팔려 간다.

이탈리아 작가 안드레아 케르베이커의 ‘책의 자서전’에 나오는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이처럼 ‘책’이다. 그는 세상에 막 등장해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시기부터 겉표지가 떨어져나가 버린 채 고서점에서 네 번 째 주인을 기다리는 상황까지, 60년간의 일생을 회고한다. 인간과 다름없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같이 지냈던 책들과의 대화를 통해 작품과 작가에 대한 신랄한 평가를 이어갈 뿐만 아니라, 시대와 함께 변해가는 독서 취향이나 출판현황의 흐름을 파악한다는 점에서 책의 자서전이라기보다 한 작가의 자서전이나 다름없다.

이 책이 생각난 것은 신춘문예에 막 등단한 제자의 방문을 받고 나서였다. 1월은 많은 작가들이 ‘베스트셀러’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세상에 나오는 달이다.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축하가 이어지는 시기이다. 작품도 서점의 조명을 받는 위치에 꽂히게 된다. 이처럼 신춘문예에의 등단은 누구에게는 중요한 소원을 이룬 순간일 것이다. 제자가 기뻐하는 모습을 다행스럽게 여긴 이유는 등단 후 지나친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하는 경우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를 작가들 사이에서는 ‘등단 후유증’이라고도 한다. 이유가 다양하겠지만, 필자 생각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기 전에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작품을 내놓아야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힐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노심초사해서 서둘러 세상이나 타인의 눈에 맞추려고 한다. 이미 거목이 된 다른 작가의 작품을 들쳐보고, 그럴 듯한 작품을 내놓아야 한다고 고심한다. 하지만 그런 작품의 견고함이나 섬세함을 당장 따라 잡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막 등단한 자들은 세상을 향해 싹을 막 틔운 것이나 다름없다. 서툴지만 신선한 미래의 가능성에 매료된 사람들에 의해 뽑힌 것이다. 새싹은 당연히 약하다. 각고의 노력으로 간신히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니 말이다. 안에만 있던 ‘눈’이 바깥으로 나와서 자신이 본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줄 위치에 막 서게 된 것이다. 그런데 세상 밖으로 이제 막 나온 ‘눈’이 거목을 쳐다보면 당연히 기가 질린다. 게다가 그들을 흉내 내면 당연히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자기만의 색깔과 모양의 꽃을 위해서, 이제야말로 자기 뿌리에서 깊게 감수성을 끌어 올릴 시기인 것이다. 혹여 ‘등단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면, ‘책의 자서전’의 책 주인공이 마지막 했던 말을 들려주고 싶다. “난 아직 줄 수 있는 게 많아. 그래서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생각이 난거야.” 독자들은 그대에게 들을 이야기가 많다.

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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