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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간 지켜온 사찰음식...비건 철학·문화의 정수리…
해방촌 이색 사찰음식점 ‘소식’ 을 가다

록밴드‘ 전범선과 양반들’의 전범선(왼쪽부터), 셰프 안백린, 디자인 전략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박연 씨는 해방촌 중턱에 ‘사찰음식점’ 소식을 열었다.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지나쳐버리기 쉬운 인적 드문 골목. 해방촌 중턱에 작은 사찰 하나가 생겼다. 이곳의 주지스님은 록밴드 ‘전범선과 양반들’의 보컬 전범선(28) 씨다.

해방촌 사찰은 ‘파격’이 넘친다. 팔도강산 자리한 전통 사찰을 떠올린다면 오산. 셰프 안백린(26) 씨는 이곳을 “비욘드 사찰(사찰 그 이상의)”이라고 부른다. 골목 안의 사찰에선 반복적 패턴의 테크노 음악이 낮게 깔린다. 10평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공간엔 8개의 개인용 식탁과 목탁 하나가 놓여 있다. 이 모든 것이 해방촌 사찰인 ‘소식’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전범선, 채식 셰프 안백린, 디자인 전략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박연 씨는 지난해 12월 서울 해방촌의 ‘비건 로드’에 사찰음식점 ‘소식’을 열었다. 최근 세 사람을 만나 ‘소식’의 이야기를 들었다.

▶ “사찰음식이 얼마나 멋진데…”=세 사람에겐 공통분모가 있다. 채식주의자, 오랜 외국 생활, 문화(음악, 미술, 요리)와 철학에 애정이 남다르다는 점이다. 채식을 한다지만, 20대 후반의 젊은 세대가 사찰음식에 관심을 가지는 일은 흔치 않다. 국내에서도 20대를 겨냥한 채식당은 서구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 안타까움이 이들을 뭉치게 한 추동 엔진이었다.

“사찰음식은 비건(Vegan, 완전한 채식주의자)인 데다, 2000년간 근본을 지켜온 멋진 문화이자 철학이라고 생각해요. 제 또래 중 비건 음식을 소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왜 한국적인 것을 들여다보지 않고, 서구화된 카페만 찾는지 안타까웠어요. 진짜 뿌리깊고, 가치있는 것들을 우리 세대 밀레니얼들이 조금 더 깊이 알고, 다시 한 번 지켜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박연)

비건인 전범선 씨도 마찬가지였다. 록밴드의 멤버이자, 두루미 출판사의 발행인이며, 동물권 단체(동물해방물결)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자신의 모든 발걸음에 하나의 목적을 담고 있다. ‘역사적 단절의 회복’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영국 유학 시절을 떠올리며 “동물해방의 발상지는 영국이지만, 그들의 영감은 늘 동양 철학이었다. 이제야 우리 문화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 거꾸로 찾아오게 됐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들은 대부분 서구식 레스토랑에 가서 아보카도나 콩고기 버거를 먹어요.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사찰음식이라는 이렇게 멋있는 문화가 우리에게 있더라고요. 서양인보다 우리가 더 멋있는 걸 할 수 있는 거죠.” (전범선)

▶ 소식, 사찰음식과 불교 철학을 재창조하는 공간=소식의 가치에는 불교와 세 사람의 철학이 더해졌다. 레스토랑의 이름은 박연 씨가 지었다. ‘모든 음식을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웃을 소ㆍ笑), ‘과식을 삼가고 최소한의 양만 섭취하며’(적을 소ㆍ少), ‘가능하면 육식을 삼가고 채식을 한다’(나물 소ㆍ蔬)는 ‘삼소’의 의미를 담았다.

“소식은 ‘고기 없는 밥’이라는 뜻이에요. 소식은 상중에 있거나 수행하는 사람들이 먹는 마음을 비우는 음식이에요. 이제는 잊혀진 말이 됐죠. 지금은 ‘비건’이라는 말이 더 유명하지만, 사실 소식은 비건이라고 써있는 것과 같은 거예요.”(전범선)

이곳은 기존의 사찰음식점과는 다르다. 전통과 파격을 넘나든 재해석으로 가득 찼다. 전범선 씨는 “서양식 퓨전이라 할지라도 공간을 사찰이라 부를 수 있고, 그 안에 철학이 담겨있다면 사찰음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곳에선 술을 마셔도 돼요. 하지만 동물을 해치지 않고, 자연의 순환과 원산지부터 식탁에 오르는 과정까지의 고민을 담아내죠.”(전범선)

식재료 하나를 고를 때에도 세 사람의 철학을 담았다. 안백린 씨는 “장단콩, 호랑이콩과 같은 로컬 식재료를 사용하고, 지속가능한 식탁을 만들기 위해 무농약 식재료를 쓴다”고 말했다. 백미나 수입쌀보다는 흑보리, 청차조, 메일과 같은 국내산 고대곡물로 밥을 짓는 것도 특징이다.

‘소식’이라는 공간은 알게 모르게 찾아온 누구에게나 사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각자가 원하는 만큼의 자유와 얻을 수 있는 만큼의 해방을 찾아 돌아간다. “소식은 수행과 소통의 공간으로 이 땅에서 번뇌를 가진 남녀노소 동물에게 편견과 차별 없이 열려 있어요. 이곳에서 음식을 나누고, 서로 소통하면서 치유와 연대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찰의 주지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거예요.” (전범선)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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