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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당신은 ‘왜’ 귀농·귀촌 하려는가

  • 기사입력 2019-01-0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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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주도로 2009년 시작된 귀농ㆍ귀촌 전성시대는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2010년 가족(4인)과 함께 강원도 홍천으로 귀농한 필자는 고스란히 이 과정을 함께 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도시를 내려놓고 시골로 향했던 당시의 초심을 다시 한 번 다잡아 본다. 필자와 가족을 위해, 그리고 예비 귀농ㆍ귀촌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당신은 왜 귀농ㆍ귀촌 하려는가?”라고 묻는다면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다. 그중 많은 이들은 성공한 억대농부를 좇는다(마치 농촌에 가면 노다지광산이 있고, 금맥을 캔 이들이 많은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 귀농ㆍ귀촌정책과 매스컴의 요란한 부추김이 단단히 한몫을 했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 보면, 돈과 명예를 거머쥔 귀농인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매스컴에선 연일 성공사례를 쏟아내고 있지만, 대개는 과대 포장되어 있다고 본다. 또 농업매출 1억 원이 넘는 억대농부(전체 농가의 3.2%)라고 해도 “나는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미 초 고령화된 농촌 마을에서는 연로한 어르신들의 부음소식이 간간이 들려온다, 소멸위기에 처한 농촌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런데 그중에는 상대적으로 젊은 귀농·귀촌인들의 사망소식도 간혹 섞여있다. 필자 주변에서도 지난해 두 명의 귀농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50대 중반의 한 고인은 2010년 지병 요양 차 강원도의 깊은 산속으로 귀촌했고, 자연의 치유력에 힘입어 몸을 회복했다고 한다. 이후 귀농으로 전환해 남다른 노력으로 고소득 작물을 키워 억대농부의 반열에 올랐다. 귀농·귀촌 멘토로도 활동했다. 또 다른 고인은 전입 만 4년차로 정착과정에 있던 50대 후반의 여성 귀농인이었다. 그 또한 주변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로 억척스럽게 많은 일을 했고, 마을 일에도 앞장섰다고 한다.

그럼 도대체 왜? 의학적 사인은 심장질환이지만, “농사일ㆍ사업 등 계속된 과로와 스트레스가 황망한 죽음을 불렀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말이다. 현지 귀농·귀촌인들에게 던진 충격파가 자못 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적지 않은 귀농·귀촌인들은 새로운 인생2막의 터전으로 택한 농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넘나드는 치열함 속에서 살고 있다. 극히 일부는 그 치열함의 결과로 성공이란 열매를 얻기도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보면, 성공했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것은 아닌 것 같다.

2010년 당시 필자의 시골행(行) 초심은 ‘도시 내려놓기’였다. 돈ㆍ명예 등 ‘성공’이라는 도시의 가치가 아니라 힐링 느림 등 ‘행복’이라는 전원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겠다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안분지족의 삶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초심은 흔들림이 없다.

농촌에 들어와 내 인생그릇에 이 전원의 가치를 담고자 한다면 도시의 가치들은 하나씩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원의 가치가 담길 공간이 없다. 새해를 맞아 귀농·귀촌을 준비 중인 이들에게 전원(시골)에서의 ‘성공’ 보다는 ‘행복’을 일구어보라고 감히 말씀드린다. 물론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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