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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조 이사람- 김성진 헌법연구관] “헌법재판, 개인의 보편적 권리 다뤄 다른 나라의 선례는 큰 참고자료”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 로스쿨 J.D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재판소 재판연구원 △헌법연구원 국제조사연구팀장 △베니스위원회 헌법재판공동위원회 위원 △베니스위원회 한국 담당 연락관 △헌법재판연구원 비교헌법연구팀장 △헌법재판소 국제심의관

‘헌법연구관’은 일반에 아직 생소한 직역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에서 나오는 주요 결정 뒤에는 이들이 써낸 수많은 보고서가 녹아 있다. 9명의 재판관들이 연간 수천 건의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것도 이들의 뒷받침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법연수원이나 로스쿨 출신 법조인이고, 실제로 판사와 같은 대우를 받는다.

그 중에서도 김성진(46) 연구관의 이력은 독특하다. 사법시험 출신도 아니고, 대학에서는 지구환경과학을 전공했다. 인종차별의 역사를 극복한 남아프리카공화국 헌재에서 일했던 경력으로 연구관에 임용된 사례다. 인권은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해외 사례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일은 헌법재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김 연구관을 최근 서울 종로구 재동 연구실에서 만났다.

“양심적 병역거부나 수용자들에게 투표권을 인정할지 여부처럼 헌법재판은 개인의 보편적 권리를 다루기 때문에 사건이 유사한 경우가 많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수사기관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거나,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는 것처럼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비슷한 문제가 생기기도 하죠. 인권에 대한 한 나라의 선례는 다른 나라의 큰 참고자료가 됩니다.” 김 연구관은 헌재 국제심의관과 헌법재판연구원 비교헌법연구팀장을 지냈다. 세계 헌법재판기관 협의체인 ‘베니스 위원회’ 한국 담당 연락관으로도 활동 중이다.

그가 대학에 입학했던 1991년에는 노태우 정권 퇴진 시위가 한창이었다. 명지대 학생이었던 강경대가 시위 도중 숨지는 일도 있었다. 자연스레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졌고, 이과생이었지만 군대를 다녀온 뒤 미국 로스쿨에 진학했다. 학점 교류를 위해 머물던 프랑스에서 인연을 맺은 리차드 골드스톤(Richard Goldstone) 남아공 재판관이 김 연구관을 낯선 곳으로 이끌었다. “‘남아공헌법과 사회변화’라는 과목을 가르쳐주셨어요. 인종차별 정권이 끝나고 큰 피를 흘리지 않고 체제전환을 할 수 있었던 과정은 헌법을 통해 가능한 것이었다는 게 수업 내용이었죠. 그 분의 ‘로클럭(재판연구원)’으로 지원을 했어요. 처음에는 몇 달만 있다 오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싶었습니다.” 남아공은 흑인이 소수자가 아닌 다수인 곳이었다. 그는 지금도 “차별은 실제가 아닌 편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남아공은 역설적으로 세계적으로 헌법재판이 가장 잘 발달한 나라였다. 그 곳에서 헌법은 소극적으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도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정책에 개입하는 가치로 작용했다. 대표적인 게 산모에게 에이즈 치료제를 사용하는 게 합헌이라고 본 사례다. 2000년대 초반, 남아공에서는 항바이러스제 ‘네비라핀’을 사용하도록 허가할 것인지가 논란이었다. 이 약을 임신부에 투약하면 신생아의 감염률이 크게 떨어지지만, 남아공 정부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배급을 중단시켰다. 현존하는 태아의 건강과 앞으로 생길지 모르는 부작용의 위험 중 어느 쪽을 더 비중있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였다. “헌재가 정부의 보건정책을 적극적으로 심사해서 위헌이라고 결정했어요. 제약회사가 약을 무료로 준다고 했죠. 선고되던 날, 남아공 어머니들이 재판소 앞에서 아프리카 전통춤을 추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헌법재판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꼈고, 우리나라 헌재에서도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 연구관은 2003년부터 우리나라 헌재에서 일한 경험을 말하며 자신을 ‘행운아’라고 했다. 법률가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 현안을 헌법으로 해소하려고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탄핵심판이나 신행정수도 이전 사건 등 굵직한 현안이 헌법 재판의 영역으로 밀려왔고, 헌재의 위상도 올라갔다. 그는 “탄핵사건은 다른 나라에서도 정치적으로 해결되지, 사법부에 의해 해결되는 게 거의 없는 사건이었다”면서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불신이 있었기 때문에 ‘정치의 사법화’라는 현상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연구관은 헌법재판을 위해 다른 나라의 동향을 파악하는 업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형제나, 양심적 병역거부처럼 국적에 관계없이 생기는 문제들이 있잖아요. 다른 나라에서 고민한 사례가 있다는 건 우리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는 큰 자극이 될 수 있어요. 우리에게 앞으로 어떤 문제가 생길지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효과도 있죠.”

김 연구관은 인터뷰 도중 매고 있는 넥타이를 가리켰다. 쿠데타 여파로 진통을 겪는 터키 헌법재판소 연구관들이 준 선물이다. “그 친구들이 반역죄로 감옥에 가 있어요.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인권이라는 게 당연한 것 같지만, 늘 경계하고 지키지 않으면 어느 한순간에 퇴보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신문을 보니 철거민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우연히 어느 나라에 속하게 됐다는 환경이 아니라, 어디서든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세상이 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김성진 연구관은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 로스쿨 J.D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재판소 재판연구원 △헌법연구원 국제조사연구팀장 △베니스위원회 헌법재판공동위원회 위원 △베니스위원회 한국 담당 연락관 △헌법재판연구원 비교헌법연구팀장 △헌법재판소 국제심의관 

좌영길 기자/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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