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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유전자 편집 아기 논란
그 선은 넘지 말았어야 했다. 얼마전 홍콩의 학회에서 중국의 허젠쿠이 박사는 크리스퍼 기술(CRISPR-Cas9)을 적용하여 HIV 감염에 관여하는 CCR5 유전자를 제거한 루루와 나나 쌍둥이 아기들이 태어났다고 발표하였다. 동료 평가도 논문도 없다.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첫 크리스퍼 아기의 탄생은 허첸쿠이 박사의 입을 통해 언론과 학회에 발표되었다. 크리스퍼 연구의 선두자 제니퍼 두드나는 이 사건을 소름끼치도록 두려운 일이라고 비난하였고, 노벨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볼티모어 박사는 “과학계가 자기 검증에 실패한 사건”이라고 평하였다.

크리스퍼 기술은 조만간 노벨상을 받을 것이 유력하다고 점쳐지는 생명공학 기술로서 생명 현상의 암호를 담고 있는 DNA를 마음대로 편집하는 기술이다. 본래 세균이 바이러스에 대항하여 구축한 일종의 면역 체계의 방법을 응용한 것으로 대부분의 생명체에 적용이 가능하여 이제는 대세의 유전자 편집 기술로 발전하였다. 크리스퍼는 타겟하는 DNA를 정확하게 교정할 수 있으면서도 불필요한 DNA 찌꺼기를 남기지 않기 때문에 분자생물학적 기술의 혁명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누군가 사람의 수정란을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2016년 2월 영국은 프란시스 크릭 연구소의 과학자들이 인간 배아의 유전체를 연구용으로 교정하는 것을 세계 최초로 승인하였다. 단, 인공 수정 후 남은 배아를 14일 내에 반드시 폐기하고 자궁 착상을 금지하는 것을 조건으로 붙였다. 우리나라 기초과학연구원의 김진수 박사도 미국의 미탈리포프 박사와 함께 수정란에 유전자를 수정하여 선천적 유전병을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고하였으나 역시 자궁착상을 시도하지 않았다. 크리스퍼 아기는 금기어였다. 크리스퍼 기술의 정확성이 완전히 담보되지 않았고 또 난치병 치료를 위해서라면 꼭 수정란을 건드리지 않고도 성체 줄기 세포의 유전자를 편집하여 윤리적 문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윤리적으로 이루어지고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는지를 실험에 앞서 심사하는 기관 생명윤리위원회 (IRB)의 심의 규정에 따르면 실험자는 대상자를 모집할 때 연구 목적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고 혹시라도 발생할 위험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여야 한다. 그런데 허젠쿠이는 IRB 심의를 받지도 않았고 실험 대상자를 모집하면서 실험의 내용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엄연히 반윤리적 행태이다. 게다가 루루와 나나의 CCR5 유전자 편집의 결과는 미숙하기 짝이 없는 결과를 낳았다. 루루의 CCR5는 반만 적중하였고, 나나의 경우 의도하지 않은 돌연변이가 발생하였다. 굳이 한다면 면역 세포에만 크리스퍼로 CCR5를 없애도 되었을 것을 수정란에 하는 바람에 CCR5가 있는 세포와 없는 세포가 뒤죽박죽 섞여 있는 모자이크를 만들어버린 낭패의 결과가 나왔을 수 있다. 더 두려운 것은 나나의 CCR5 돌연변이의 생리적 결과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감기에만 걸려도 생명이 위태롭지 말란 법이 없다. 얼마나 많은 인간배아를 사용하였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강행한 것인지 불분명한 것도 큰 문제이다. 세계 2차 대전에서 일어났던 인간 대상의 의학 실험에 버금가는 끔찍한 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1978년 첫 인공 수정 아기가 태어났을 때도 사회적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지금 인공수정은 불임 부부들에게 보편화된 시술이다. 미래 어느 날 유전자 맞춤형 아기는 인공수정처럼 보편화 될 수 있을까? 만일 다수의 사람들이 유전자 편집 아기를 원한다면 인공 수정 아기의 결과 처럼 실험을 행했을 때 얻어지는 이득이 행하지 않았을 때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이 확실할 때일 것이다. 즉, 반드시 태어나는 아기의 생명권을 보장하고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여기서 두 발짝 쯤 더 나아가 잘 생긴 아이, 머리 좋은 아이, 말을 잘 듣는 아이의 유전자를 쇼핑하여 맞춤형 아기를 만들어내는 세상을 당신은 과연 원할까? 마음이 복잡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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