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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사람 사이 지켜야할 경계
소설가 소노 아야코가 쓴 <약간의 거리를 둔다>라는 책에는 같은 제목의 짧은 에세이가 들어있다. 그 에세이에서 소설가는 어머니가 집에는 통풍이 중요하다고 했던 말을 빌어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을 이끌어낸다. ‘깊이 뒤얽힐수록 서로 성가시러워진다’며 ‘사람이나 집이나 약간의 거리를 둬 통풍이 가능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또는 그는 같은 에세이에서 ‘거리’가 얼마나 위대한 의미를 갖는가를 말한다.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상처받지 않는다’며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으면 세월과 더불어 그에게 품었던 나쁜 생각들, 감정들이 소멸되고 오히려 내가 그를 그리워하는 건 아닌가, 궁금함이 밀려온다’는 것.

사실 우리에게 ‘거리를 두라’는 말은 조금 차갑게 들리는 면이 있다. 그건 마치 ‘정이 없다’는 뜻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간의 거리를 둔다>는 제목을 보고 그 저자가 일본소설가라는 걸 보면서 그건 아무래도 ‘일본의 정서’가 아니냐고 치부하기도 한다. 속내를 표현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기로 유명한 일본인들의 정서에나 맞는 일이 아니냐고.

하지만 최근 들어 바로 이 ‘약간의 거리’가 우리에게 지금 시급한 새로운 관계의 문화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것은 최근 들어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우리네 가족주의 문화의 대안으로서 이른바 ‘경계 존중의 문화’가 제시되고 있어서다. 사람 사이에는 가족이든 연인이든 부부든 친구든 동료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할 경계가 있고, 그것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문화.

어째서 ‘경계 존중의 문화’가 중요한가는 그 정반대로 우리가 ‘가족주의’의 틀 안에서 겪어온 많은 관계들의 문제들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가부장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 중심에 서거나 누군가 희생되는 것이 용인되는 관계의 부작용을 낳았다. 사위는 손님으로 부르며 ‘경계를 존중해주면서’. 며느리는 가족이라며 ‘경계를 침범하는’ 일들이 그 가족주의의 틀에서 벌어졌고,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의 대표로 내세워져 홀로 희생을 강요받는 일들도 벌어졌다.

가족주의 문화는 비단 가족 내부에만 존재하던 것이 아니다. 이 문화는 사회로 국가로까지 확장되어 관계 속에서 누군가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되었다. 이를테면 “우리가 남이가”라고 말하며 가족 경영을 얘기하는 기업문화는 사실상 남인 샐러리맨들을 가족이라 묶어 비합리적인 노동마저 감당하게 했다는 것이다. 국가주의는 이러한 가족주의의 확장판이라고 봐도 무방할 게다.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걸 강조함으로서 개인적 취향이나 선택들을 후순위로 만들어버리는 일들이 당연한 듯 여겨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문화는 최근 사회적 문제로까지 지목됐던 지위를 이용한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폭력 같은 직접적인 사안들을 예방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개인이 우선되는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또한 저마다의 취향과 개성들을 매몰시키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는 게 미덕이 되는 다양성 사회로 가는 중요한 전제조건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 때 우리는 ‘뭉쳐야 산다’는 걸 삶의 가치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생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생존을 넘어 저마다의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다. 때론 뭉치더라도 적당한 거리와 경계를 유지함으로써 각자의 행복이 침범당하지 않는 새로운 관계의 문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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