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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백두칭송의 불편함과 치기어림
불편하다. 꼭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13개 단체가 조직했다는 ‘백두칭송위원회’를 지켜보며 드는 첫 생각이었다.

조만간 현실화될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 의미를 깎아내릴 생각은 전혀 없다. 김 위원장이 지난 4월27일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6ㆍ25전쟁 이후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판문점 남측 지역으로 내려오기는 했지만,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찾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대사변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긍정적 영향은 물론, 싱가포르 야경을 보고 감탄했다는 김 위원장이 서울의 발전상을 목도하고 경제ㆍ핵 병진노선 대신 내세운 경제건설총집중노선에 한층 더 주력할 것이란 기대감도 가질 법하다.

김 위원장 입장에서 서울 방문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 이상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도 이해가 된다.

철저한 통제가 가능한 평양과 달리 경호와 의전에서 어려움이 뒤따를 서울을 찾는 것은 나름 결단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김 위원장의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2000년 6월 당시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한 서울 답방 약속을 지키지 못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작년 한해 한반도 위기설이 상시화 될 만큼 벼랑 끝까지 내몰렸던 한반도정세가 올해 들어 화해와 평화무드로 급선회하기까지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김 위원장의 리더십이 있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도 ‘백두칭송’이란 표현은 도를 넘어섰다. 진심으로 김 위원장의 성공적인 서울 방문을 기원했다면 ‘칭찬하여 일컬음’을 뜻하는 ‘칭송’이 아닌 ‘환영’ 수준에서 멈췄어야한다. 굳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 가계의 ‘백두혈통’을 의미하는 ‘백두’라는 표현을 넣은 것도 적절하지 않다.

백두칭송위원회라는 명칭 자체부터가 북한이 2017년 김일성 주석 탄생 105주년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탄생 75주년, 김정은 국무위원장 최고지도자 추대 5주년을 맞아 야심차게 추진했지만 국제사회로부터 희화화 대상으로 전락했던 ‘백두산위인칭송대회’를 연상케 한다.

백두칭송위원회 명칭과 행사를 주도한 측에서는 공세적인 표현과 행보로 이슈화에 성공했고, 우리 사회의 가장 강고한 금기를 깼다고 자평할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아직 대다수 국민이 북한, 그리고 김정은 국무위원장 가계에 대한 아픈 기억과 상처, 공포를 지니고 있는 상황에서 큰 그림을 고려하지 못한 치기어린 행동이라 할 수밖에 없다.

과도한 목소리는 지난 10여년간 단절된 남북관계 끝에 어렵사리 재개된 남북관계 개선국면과 9월 평양정상회담의 감동, 그리고 모처럼 무르익고 있는 평화통일에 대한 국민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을 뿐이다.

당장 백두칭송위원회의 활동은 우파단체인 ‘백두청산위원회’의 결성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보수성향단체인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와 자유연대, 자유대한호국단 등은 백두칭송위원회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가뜩이나 극심한 사상적 갈등과 대립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을 또다시 이념전쟁의 도가니 속으로 밀어 넣은 셈이다.

‘이런 지도자와 함께하는 인민은 행복할 것’, ‘미국의 힘을 남과 북이 압도했다’ 식의 주장은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국제정세와 치열한 남남갈등 속에서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스럽게 문제를 풀어가고자하는 문재인 대통령이나 미국과 힘겨운 싸움을 앞둔 김정은 국무위원장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 사회에 반북ㆍ반공ㆍ반김정은 정서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치기 어린 행동이 자칫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 때 극우진영의 돌발행동에 대한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쯤되면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백두칭송위원회가 ‘친북’을 가장한 고도의 ‘반북’이 아닐지 의심해봐야할지 모를 일이다. 진보든 보수든 극단으로 치우친 목소리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프로세스에 저해가 될뿐 아니라 역사의 범죄로 기록될 수 있다.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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