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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필수의 어장관리] 아침 10시, 아쿠아리스트가 회칼을 빼드는 시간
[헤럴드경제=장필수 기자] [편집자 주] 누구나 한 번쯤, 수족관 유리에 코를 박고 자유롭게 유영하는 물고기를 바라본 기억을 갖고 있을 겁니다. 살면서 한번은 찾게 되는 장소인 아쿠아리움.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모니터 속에서만 봤던 해양동물과 형형색색의 열대어가 시선을 끌지만, 그 순간뿐입니다.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출구로 나서면서 알 수 없는 허전함을 느끼곤 합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우와~와~” 같은 감탄사 너머의 아쿠아리움을 알아보는 연재물을 마련했습니다. 두 번째 주제는 ‘먹이’ 입니다. 






#. 오전 10시, 사시미 칼을 뽑는 시간


매일 아침 오전 10시. 아쿠아리스트들은 삼삼오오 한곳에 모여 사시미 칼(회칼)을 뽑아듭니다. 연륜이 담긴 손잡이 밑동에는 각자의 이름이 적혀 있죠.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영업을 해야만 하는 횟집이 아쿠아리움에 있습니다. 단골은 바다코끼리, 참물범, 펭귄과 같은 해양동물이지요. 
오전 10시 아쿠아리스트들은 조리실에 모여 당일 해양 동물에게 먹일 생선을 손질하기 시작한다.

요리해야 할 먹이는 보통 8~10종류입니다. 지난 8일에는 임연수어, 고등어, 양미리, 열빙어, 오징어, 명태, 전갱이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3~4명의 아쿠아리스트들은 보통 한 시간 안에 총 5박스, 약 50~60㎏에 달하는 먹이를 동물별로 먹기 좋게 손질 하는데요. 빠르고 정확하게 많은 양을 매일 손질해야만 하는 만큼, 이들의 칼질에는 거침이 없습니다. ‘원래부터 칼을 잘 다뤘냐’고 물으니 “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개인별로 가지런히 놓여있는 회칼.

참고로 언급된 8종류 모두 냉동 상태라는 점을 제외하면, 사람이 먹어도 맛있는 품질 좋은 생선입니다. 동물 먹이라고 해서 오래됐거나 저렴한 수입산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촬영 장소인 아쿠아플라넷 일산에서 가장 먹성이 좋은 동물은 바다코끼리입니다. 몸무게가 700㎏에 달하는 바다코끼리는 임연수어, 고등어, 양미리, 열빙어 등 여러 종류의 생선 약 15~20㎏ 정도를 하루 4번에 걸쳐 섭취합니다. 그보다 몸집이 작은 물범이나, 물개, 펭귄은 하루에 2~5㎏ 정도의 생선을 소화합니다.

관상어 먹이는 해양동물에 비하면 조금 수월합니다. 주로 아쿠아리스트가 손질한 새우(크릴 새우, 곤쟁이 새우, 민물 새우 등)나 이미 제조된 인공ㆍ배합 사료를 먹습니다. 
동물별 특성이나 취향에 맞춰 생선의 머리나 내장을 제거하기도 하고 통째로 주기도 한다.


#. 잇몸 튼튼 이가탄과 숭어

냉동어를 해동할 때는 비타민 등 필수적인 영양소가 빠져나가게 되는데, 부족한 영양분은 약으로 보충해줍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사람이 먹는 약을 해양동물이 먹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해양동물 전용으로 만들어진 약이 없을 경우에 한해 수의사가 성분을 확인하고 판단해 사람들이 먹는 약을 동물에게 처방하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참물범은 이빨이 매우 촘촘히 나는 동물인데 구강 관리를 위해 잇몸질환 보조제로 이가탄을 주로 먹인다고 해요. 치석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칫솔질은 물론 구강청결제도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 배변에 문제가 있는 동물에게는 미아리산을, 비타민이 필요한 동물에게는 사람이 먹는 비타민제를 주고 있다고 해요. 보통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 약은 동물에도 효과가 있으니까요. 동물 특성과 상황에 맞춰 아쿠아리스트와 수의사가 협의 후 처방합니다. 
손질을 끝낸 명태. 명태는 비늘 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생선 중 하나다. 비늘을 벗긴 후 각 동물별 취향이나 상태에 따라 내장과 머리를 제거 여부를 결정한다.

인간도 밥만 먹고 살 수 없는 것처럼 해양동물도 매번 같은 식사를 하진 않습니다. 해마다 아쿠아리움은 특식을 준비하는데요, 아쿠아플라넷 일산은 살아있는 먹이를 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수조에 살아있는 생물을 먹이로 풀어두면 운동성을 증진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행동풍부화’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동풍부화란 야생에서 보이는 자연스러운 행동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일종의 교육 프로그램인데, 동물은 움직이는 먹이를 잡으면서 스트레스를 없애고 야생성을 회복하기도 하지요. 주로 수달에게는 미꾸라지와 장어가, 다른 해양동물에게는 숭어가 특식 재료로 쓰입니다. 
바다코끼리 메리의 몸무게는 460㎏인데, 하루에 약 15~20㎏ 정도의 생선을 먹고, 부족한 영양분은 미야리산과 비타민 등을 통해 보충한다.


#. “올해는 오징어가 비싸서…”

사실 아쿠아리움에서 만날 수 있는 어류나 무척추동물은 육상 생물들과 비교하면 먹이 값이 적게 드는 편입니다. 과일과 고기를 먹지 않고, 먹는 양도 적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먹이의 상당 부분이 바다에서 직접 잡아와야 하는 생선이라, 어획량이 줄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요새 자주 뉴스를 통해 접하는 금(金)징어 소식은 주부뿐만 아니라 아쿠아리스트에게도 슬픈 소식입니다. 오징어뿐만 아니라, 해양동물이 즐겨 먹는 먹이는 모두 우리 밥상에도 자주 올라오는 생선입니다. 
오징어는 해마다 가격이 오르는 품목 중 하나다. 아쿠아리움은 최대한 신선하고 다양한 먹이를 구하려고 노력한다. 잘 먹이는 것 또한 경쟁력이어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특정 생선의 어획량이 급격히 줄면 아쿠아리움에도 비상등이 켜집니다. 일례로 오징어 가격이 오르면, 오징어를 좋아하는 가오리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아쿠아리스트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하는데, 가오리 사육 담당인 아쿠아리스트와 먹이 수급 담당자 사이의 눈치싸움도 사뭇 치열하다고 합니다.

“오징어가 1㎏당 1000원이 올랐고 가오리만 오징어를 먹고 있는데, 꼭 필요한가요? 대체 먹이를 마련해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먹이 담당자가 조심스레 말을 꺼내면, “안 됩니다. 저희는 오징어를 먹여야 해요. 대체할 수 있는 먹이를 찾기 어렵습니다”라고 털어놓는 식입니다. 아쿠아리스트 입장에선 자신이 돌보는 동물이 행복한 게 최우선이니까요.

물론 정말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하면 당장 대체 먹이에 적응하는 훈련을 시작합니다. 명태를 선호하는 동물이 있는데 명태를 공급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면, ‘고등어를 먹으면 명태를 받을 수 있다’는 신호를 각인시키시고자 고등어와 명태를 번갈아가며 길들이기 시작합니다.

아쿠아플라넷 일산은 되도록 우리나라 바다에서 잡히는 제철 수산물을 대량으로 사들여 냉동 보관한 후 조금씩 꺼내 쓰고 있습니다. 매년 11월과 12월이 제철인 양미리가 조만간 냉동고를 채울 예정이라고 합니다. 
조리실에 설치된 급여량 게시판. 동물별 식사량과 특이사항 등이 기재돼 있다.


essentia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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