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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 & 스토리] ‘세제의 달인’서 가계·기업 살리는 명의로…
문창용 사장이 걸어온 길
취임 2년차를 맞은 문창용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C등급을 받은 캠코를 취임 첫 해 만에 A등급 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소통을 강점으로 삼아 캠코를 안에서부터 바꿔놓았고 남은 1년도 가계ㆍ기업ㆍ공공 자산의 사회ㆍ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공적자산관리전문기관으로 만들기 위해 매진할 계획이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처음도 끝도 ‘봉사하는 삶’ 캠코 경영혁신 이끈 문창용 사장…기업에 적기 수혈도 곧 봉사…캠코 법정자본 확충 ‘또 한번의 봉사’ 위해 온힘


“세상물정 모르는 초등학생 시절이었어요. 법관이 된다고 했나, 대법원장이 된다고 그랬나…. 그런데 고등학생 때가 1970년대 유신 말기여서 검열이 많았거든요. 시위를 한 이들이 재판을 받는 기사를 접하곤 법관에 대한 실망이 컸습니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그래서 법대를 안 가고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죠.”

그렇다고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접지는 않았다. 행정학을 택한 것은 변화를 위해선 조직을 움직일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이념써클에 들어갔다. 사회과학서적을 탐독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꿈꿨다.

“전두환 정권이 시작되면서 시위에도 많이 나가고 이념써클도 할 때죠. 써클 내에서 내부 노선을 가지고 친구와 다툼이 있었어요. 그 친구는 혁명주의자였고 저는 온건한 개혁을 바랐습니다. 온건한 개혁을 위해선 조직 내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행정고시를 봤습니다. 세상을 바꿨는지, 개혁을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제28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문창용 사무관. 그런데 ‘세상’을 바꾸려했던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세제’를 다루는 일이었다. 1984년부터 2016년까지 32년간의 공직 생활 가운데 통계청에 근무했던 2년간을 제외하면 30년 경력이 모두 세제ㆍ국고 관련이었다. 마지막 직책도 기획재정부 내 ‘빅3’로 꼽히는 세제실장이다. 종교인 과세, 담뱃세 인상, 연말정산 종합대책 등 오랜 세제의 난제들이 그의 손에서 풀였다. 회계학 박사 학위도 갖고 있다.

오는 18일은 취임 2주년을 맞는 문창용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을 최근 서울 강남구 캠코 서울지역본부에서 만났다.

▶세제 1인자에서 경영혁신의 리더로=2016년말 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에 취임했을 때 의아해하는 이도 있었다. 세제 전문가가 왜 자산관리공사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는지. 하지만 세제ㆍ세금은 결국 경제ㆍ경영의 압축판이다. 경영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세무조사다. 경영을 속속들이 파악하지 못하면 세금도 알 수 없다. 하물며 세제를다루려면 거시경제와 미시경제 모두에 능통해야 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세제 전문가는 자산관리공사에서도 보란 듯 실력을 발휘했다.

취임 첫 해부터 조직의 환골탈태(換骨奪胎)에 나섰고, 2년째인 올해에는 기업구조혁신지원센터 개소, 국유재산총조사 등 굵직한 사업들을 성공시켰다. 지방재정발전 유공으로 대통령 기관표창까지 받았다.

문 사장이 취임하기 전만해도 캠코는 2015년, 2016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B등급, C등급을 받았다. 경영이 어려우니 비전에 대한 직원들의 위기의식도 높아져 있었다. 문 사장이 이끈 2017년 성적은 달랐다. A등급이었다. 13개 기금관리형 평가기관 중 1위다. 문 사장은 공을 직원들에게 돌린다.

“새로운 CEO 취임을 계기로 직원들이 정말 뭔가 하려고 하는 열정과 의지가 높아보였죠. 눈이 반짝반짝 했고 이런 것들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혁신은 ‘함께’ 이루는 것=환골탈태가 직원들의 공이라면, 문 사장은 어떻게 취임 하자마자 사기가 떨어졌던 이들의 의지를 북돋을 수 있었을까?

문 사장은 재경부 공무원직장협의회가 실시한 투표에서 2004ㆍ2006ㆍ2007년, 3차례나 ‘닮고 싶은 상사’로 뽑히면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변화와 개혁을 위해 조직 내 소통을 중요시한다.

“전국적 네트워크를 가진 공기업은 처음이었고, 공기업으로서의 독립적 기능 그리고 사회적 가치실현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공무원 노조와 다른 금융노조도 생소했죠. 그래서 임기 첫날 취임식도 하기 전에 직원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어떤 점을 바라고 있는지를 먼저 듣기 위해 노동조합을 방문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어색했지만 캠코를 가장 먼저 만났던 그 순간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었네요.”

역시 캠코를 가장 잘 알고 있은 이들은 직원들이었다. 노조 사무실을 방문하고 조직발전을 위해 노사가 상생하자며 협조를 구했고, 직원들과의 스킨십도 넓혔다. 신입직원과의 만남, 직원생활관 호프데이, 무작위 추첨 점심식사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지금까지 1050명의 직원과 식사를 했다. 캠코 직원이 1500명인 것을 감안하면 3분의 2와 자리를 함께 한 것이다. 12개 지역본부를 모두 돌아봤고, 지금까지 이동한 거리만 8000㎞에 달한다. 지구 반경보다도 길다.

‘CEO톡톡라운지’, ‘캠코 이너뷰’(KAMCO Inner-view) 등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도 듣는다. 축구를 즐겨 직원들과 함께 뛰었다. 관료시절부터 이름난 선수였던 그는 미드필더에서 포지션을 바꿔 최전방 공격수로 뛰고 있다. ‘공공기관 노사관계 합리화 유공’으로 고용노동부장관 기관표창도 받았다.

“신나게 경영을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신바람 내서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위기를 기회로=위기를 다루는 캠코이기에 위기는 곧 기회였다. 2016년 말 문 사장 취임 당시부터 경제는 가계빚 급증, 좀비기업 난립 등으로 어려웠다. 아이러니 하게도 부실 해결사 역할이 본업인 캠코엔 일거리가 넘쳤다. 문 사장은 가계ㆍ공공ㆍ기업을 중심으로 가계 재기지원, 기업 정상화지원 등 4대 전략목표를 수립했다. 9개 전략목표로 가계 부실자산 인수확대, 취약기업 구조조정 지원 등을 설정해 공적자산관리전문기관으로 도약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다. 특히 기업 구조조정에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확대했다.

“한계 중소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적기에 이뤄지지 않으면 연쇄도산으로 이어져 한국경제 뇌관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지원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기업들이 그냥 쓰러지는 곳이 많습니다. 제도권 은행ㆍ금융기관에서 수혈이 안돼서죠. 그런 곳들에 수혈해줄 수 있는 공적기관이 있으면 상당히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회생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겠죠. 캠코 로고를 보면 혈액순환을 떠올릴 수 있는데요, 중소기업 구조조정에서 핵심역할을 우리가 하게되면 상당한 선순환 효과가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올해도 지난 4월엔 전국 27곳 기업구조혁신지원센터가 문을 열었고 211개 기업(10월 말) 회원으로 가입해 투자 매칭 등 지원 및 상담을 받았다. 이 가운데 6개 기업은 자산매입 후 임대프로그램(S&LB)을 통해 469억원의 유동성을 지원했다.

회생기업 채권을 캠코로 집중해 경영정상화가 가능한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DIP(Debtor In Possession) 금융’도 추진했다. 담보부사채 발행기업에 대한 신용공여 지원, 해운업 구조조정 지원을 위한 캠코선박펀드 확충(2019년, 1조9000억원 규모)도 변화다.

▶10년을 준비하는 1년=이제 남은 임기는 1년이지만 그는 캠코의 미래 10년을 준비 중이다. 30년째 그대로인 법정자본 확충이다. 엔진 출력을 높이려면 연료도 더 필요한 법이다. 주력 산업들의 한계에 봉착한 바로 지금 다양한 재기지원 역할의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서는 ‘실탄’ 확보가 절실하고, 바로지금이 ‘골든타임’이라는 생각이다.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문 사장은 “현행 캠코법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부실채권정리기금 운용 등 금융회사의 건전성 제고를 중심으로 제정된 이후 제대로 손질된 적이 없습니다. 30년간 변화하고 확장된 캠코의 역할 및 기능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실제 수행업무와 법적 기반이 조화되는 방향으로 법 개정안을 마련해 캠코가 공적 재기지원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 제도적 한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생각입니다.”

▶‘공직’으로 보람 얻은 인생, 이제 봉사하는 마음으로=30여 년의 공직생활에 공기업 최고경영자까지, ‘영리’가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일하며 성과도 있었고 보람도 느꼈다

“지난 2년간 캠코브러리와 같은 사회공헌 활동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좋았어요. 어르신들과 어려운 분들 문화활동을 지원하는 희망울림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지난해 연말 부산에서 공연을 했어요. 잘하진 못하지만 연습하고 발표하는 모습에 감격했고 보는 저도 뭉클할만큼 진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왔지만, 어느새 기득권층이 됐다고도 솔직히 인정하는 문 사장에게 남은 일은 ‘봉사하는 삶’이다.

“초지일관이라고 해야하나. 저는 처음과 끝이 같았으면 좋겠어요. 이해관계에 따라 왔다갔다 하지 않고 일관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성실은 기본이고, 사람을 대할때나 일을 대할때나 한결같은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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