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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조 이 사람- 박윤석 부장검사]“범죄 피해, 안전 체계 못갖춘 국가와 사회도 같이 책임져야”

중학생 수빈이(가명)의 행방은 묘연했다. 초등학생 시절 할아버지와 아버지 등에게 성폭행을 당한 수빈이는 가족들이 떠나거나 구속돼 기댈 곳이 없었다. 국가는 범죄자 처벌에만 힘을 쏟았을 뿐, 수빈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관심이 없었다.

수빈이에게 도움의 손길이 닿은 건 2011년 박윤석(54ㆍ사법연수원 29기) 부장검사가 수원지검 안양지청에서 피해자 전담검사를 맡으면서였다. 그는 지역 범죄피해자지원센터(범피센터)에 그동안 생계비 등을 지원한 피해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보자고 제안했다. 그 리스트 속에 수빈이가 있었다.

추적 결과 수빈이는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도 성폭력의 위협은 계속됐고 보호막은 없었다. 박 부장검사는 “1회적인 지원만 할 게 아니라 심리 치료와 자립도 도왔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자포자기 심정으로 ‘나는 늘 당하는구나’ 하고 있었던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수빈이가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역의 사회복지사를 멘토로 연결했다. 또 범피센터와 새마을금고 관계자들을 모아 전세자금 3000만 원을 저리로 빌려주고 커피 바리스타 자격증을 딸 수 있게 도왔다. 수빈이를 성폭행한 사장이 다른 가출 청소년들에게 성매매를 알선했다는 혐의를 알아내 기소했다. 박 부장검사는 이 경험을 토대로 실질적인 범죄 피해자 지원 매뉴얼 초안을 만들었다.

형사정책연구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 부장검사는 지난해 검찰 최초로 범죄 피해자 보호 분야에서 1급 공인전문검사(블랙벨트) 인증을 받았다. 범죄자를 수사해 벌을 받도록 하는 일이 주 업무인 검찰에서는 독특한 경력이다. 그가 만든 매뉴얼은 발전을 거듭해 대검찰청 예규 ‘범죄피해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 업무처리지침’이 됐다.

박 부장검사가 피해자 지원에 처음 눈 뜬 것은 2005년이다. 광주지검 장흥지청에 근무하던 그는 살인 사건 사망자의 부인과 두 아들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지역 독지가들을 수소문해 생계비 100만 원 가량을 모아 전달했다. “성폭력 같은 강력 사건은 누구나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있잖아요. 가해자가 물론 가장 큰 책임이 있고 죗값을 받아야 하지만, 안전한 체계를 갖추지 못한 국가와 사회도 같이 책임을 져야 해요.” 그는 형사소송법이 피의자ㆍ피고인의 권리에 집중하면서 피해자를 보호할 방안에는 소홀한 것이 불만이었다. 현행 형사소송법에서 피의자ㆍ피고인은 576회 언급되지만, 피해자는 59회에 그친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사건 초기부터 국선변호사를 선임해주는 제도는 2013년에야 시작했다.

박 부장검사는 “과거에 죄 지은 사람을 고문하고 비인간적으로 취급했으니 권리 보장을 명문화한 거다. 그런데 피해자도 형사 절차의 한 축이니 이제는 피해자의 인권 보호를 살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주위에서 ‘변호사 개업하면 돈도 안 될 분야에 힘을 빼느냐’라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꾸준히 연구해 2011년엔 ‘회복적 사법과 한국형사사법의 발전방향’이란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검찰이 범죄자 뒤에서 울고 있는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그는 말한다. 화해와 중재도 중요하다. 그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원수처럼 여기고 울화통을 터뜨리다 마음의 병이 된다”며 “합의를 한 뒤에 응어리를 풀고 심리적 안정을 찾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2011년 범피센터 내에 가정폭력상담소를 개설한 것도 실질적 회복을 위해서다. 검찰은 2007년부터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가정폭력 사건이 송치됐는데 가정의 유지가 가능할 경우 부부가 6개월 동안 성실히 상담을 받는 조건으로 처벌을 선처하는 방안이다. 박 부장검사는 “남편이 부인을 대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인식 자체를 바꾸도록 근본적 개선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은수 기자/ye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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