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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번의 수정에도 ‘금도’를 지킨 조선왕조실록의 가치 조명

  • 기사입력 2018-11-0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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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의 위대함은 500년간 훼손되지 않은 기록의 정당성이다. 당대사를 기록하는 일임에도 기사와 편찬 과정에 권력의 개입을 배제시키고 유지해온 시스템에 세계가 놀라워하고 있다. 이는 조선초기 실록 편찬 원칙을 확립하고 사초 실명제와 사초누설 엄벌 등 사초 보호 규정을 마련, 철칙으로 지켜온 결과다.

절대 권력자 조차 볼 수 없고, 손을 대는 건 있을 수도 없었던 실록이지만 조선 후기엔 네 차례나 수정이 이뤄졌다.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후대가 판단케 하라’(역사비평사)에서 실록 수정이 이뤄진 과정을 꼼꼼하게 살폈다.

조선 후기 수정이 이뤄진 실록은 ‘선조실록’‘현종실록’ ‘숙종실록’ ‘경종실록’이다.

광해군대 편찬된 ‘선조실록’은 인조대에 수정이 이뤄졌다. 조선시대 실록 편찬사상 처음이다. 흔히 인조반정으로 광해군대의 대북 정권을 몰아내고 서인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수정이 이뤄졌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정치적 의도와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이때 실록수정은 임진왜란으로 손실된 사초가 실록의 무결성을 해쳤다고 보아 작업이 진행됐다. 실록의 사고가 불타고 전주사고본 실록만 온전한 상태에서 대제학 이식은 “나라는 멸망할 수 있어도 역사는 없어지게 할 수 없다”는 원칙을 내세워 인조의 허락하에 ‘선조실록’의 수정 책임을 맡았다. 수정 작업은 사실의 보완과 사론의 수정이란 방향으로 진행됐다.

수정실록은 실록의 원래 기사를 비판할 때 ‘실록을 살펴보건대’라는 형식을 두어 원본과 대조할 수 있게 했다. 가령 이식은 ‘선조실록’이 광해군대 몇몇 인물을 왜곡해 치켜세우거나 근거없이 깍아내리는 등 잘못됐다는 점을 들어 재평가했다. 사실의 보완 측면에서도 임진왜란 당시 의병활동, 수군활동, 이순신 관련 기록 등을 추가하고 보완했다.

오 교수는 조선후기 왕조실록의 네 번의 수정작업을 원본과 철저히 비교, 서로 대립적인 정치세력이 사론을 통해 사실을 보완하거나 사건의 진상을 다르게 주장했더라도 수정작업을 통해 사실을 지어내는 경우는 없었다고 말한다. 각자의 사상과 가치를 관철시키려 다투고 갈등이 극에 달해도 넘지 않는 선이 있었다는 것이다. 정치권력을 앞세워 역사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은 원칙이다.

실록을 수정하거나 개수한 뒤에도 원본 실록을 폐기하지 않고 남겨둠으로써 후대에 판단하게 한 점이야말로 두렵고 엄중한 역사기록의 무게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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