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 배우 이서진(47)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드라마에서 자신의 실제 모습이 많이 반영된 캐릭터를 맡으면 성공 확률이 높어진다는 점이다.

드라마 ‘참 좋은 시절’의 개천에서 용난 검사 강동석 역할보다는 아무래도 ‘결혼계약’에서 안하무인의 냉정한 부잣집 아들이지만 순정을 가지고 있는 한지훈 역할이 훨씬 더 잘 어울렸고, 더 좋은 결과를 낳았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 이서진이 맡은 준모 역도 예능에서 보던 그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듯하다.

“‘완벽한 타인’에서 변호사(유해진)나 의사(조진웅)처럼 가정이 있는 역할은 나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준모나 다혈질 백수 영배(윤경호) 역할에 매력을 느꼈다. 준모는 심각하지 않고 바람둥이라는 점만 빼면 나랑 비슷한 점이 많다. 그리 어려운 역할이 아니어서 편하게 연기했다.”

그러니까 이서진은 영화는 예능처럼 찍고, 예능은 다큐처럼 찍게 된다. 그는 “‘삼시세끼’ ‘꽃보다 할배’ ‘윤식당’은 예능이라기보다는 다큐에 가깝다. 나의 실생활을 보여주는 것이 많다. 드라마나 영화도 내 모습이 있는 역할은 편하고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서진은 “제가 예능을 선택한 게 아니고 (나영석에게) 속아서 시작했다. 실장이니 짐꾼이니 하는 것도 내가 만든 게 아니다. 꽃할배들이 좋아해주셔서 여기까지 왔다”면서 “나영석 PD와 할 때는 방송인지, 촬영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잘 편집해서 내보내는 걸 보고 나 PD를 믿고 촬영이라 생각 안하고 한다. 믿고 맡기는 것이다. 생각 안하고 말한다. 진짜 다큐에 가깝다. 나영석 말고 날 감당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어릴 때부터 친구 사이인 속초 출신의 4명의 중년남자가 부부동반 집들이 모임을 가지는 동안 자신의 휴대폰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그 시간동안 걸려오는 전화 내용이나 문자, 이메일까지 모두 공개하는 게임을 유쾌하게 시작해놓고 각자의 비밀들이 밝혀지면서 상상하지 못한 결말로 흘러간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핸드폰 스릴러' 장르라 할 만하다. ‘다모’때 이서진과 인연을 맺은 동갑내기 이재규 감독의 작품이다.

2시간동안 거의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장면만 나오는 데도 지루하지 않는 것은 사랑, 우정, 배신, 비밀, 외로움 등 우리 삶의 속살들이 함께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러가지를 포함하고 있다. 재밌기는 한데 씁쓸하다. 우정, 배신, 유머, 긴장 등 여러가지 감정이 있었구나 라고 영화를 보면서 느겼다. 웃음 포인트가 많다.”

휴대폰은 편리하고 친밀한 도구이기는 하지만 이제 사람간을 단절시키는 주범이기도 하고, 계륵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이에 대해 이재규 감독은 “소통의 왜곡 같은 걸 다루고 싶었다”면서 “하지만 재미 있는 얘기를 만들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서진은 “내가 맡은 준모는 악의가 있는 건 아니지만, 생각 없이 산다”면서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했다. “실제로 준모 같은 사람 주위에서 많이 봤다. 어린 여자 덕으로 레스토랑 사장을 하고 있지만 고마워 하지 않고 군림하는 남자다”는 것.

이서진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성과의 연기도 자연스럽다. 아내인 수의사 세경(송하윤)과의 연기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결혼계약’ 시작전부터 유이와 연기한다고 많은 욕을 먹었지만 막상 하고 나면 괜찮다고 하더라”고 했다. 워낙 자연스러운 그의 연기 덕분이리라.

이서진은 “이번 영화의 애로사항은 한번 먹으면 계속 같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었다. 앞 접시에 뭐가 있었는지를 기억해야 했다. 닭강정을 한 박스나 먹었다”고 전했다. 이어 “스킨십은 액션이라고 생각한다. 송하윤과 진짜 야한 장면을 찍었는데 안나왔다. 15세 이상 관람가다”고 했다. 그는 “휴대폰 게임으로 잃을 게 많아서가 아니라, 그런 게임은 안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서진은 “결혼 적령기가 지나고 일을 하면서 체력이 떨어지고, 사랑에 쏟는 에너지도 낮아진다”고 했다.

“꽃할배는 선생님들이 좋은 여행을 할 수 있게 서포트 하는 것이다. 내가 해주다 보니까 선생님들이 나에게 더 의지한다. 이순재 선생님은 양식을 안 먹으려 하고, 백일섭 선생님은 조금만 가도 숨이 차다고 하신다. 모른 척 할 수 없다. 선생님들의 여행 의지는 대단한 만큼 보필해 드리고 싶다. ‘윤식당’은 편하다. 요리 할 때만 긴장한다. ‘꽃할배’는 눈 뜨기가 무섭다. 24시간 내내 긴장한다. 이제 내가 체력이 달려 못 모실까봐 걱정이다. 10일간의 여행은 힘들다. 꽃할배의 짐꾼 역할은 후배인 옥택연에게 넘겨주고 싶다.”

이서진은 “제가 말을 거침없이 한다고, 할배들이 들으면 섭섭해할 말도 한다며 싸가지 없다면서 욕을 했지만 지금은 좋게 받아주신다. 나는 숨기지 못한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더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번에도 조진웅과 유해진보다 역할이 작다. 주인공 역할을 내려놓고 이렇게 새로운 역할을 하는 게 재미있다.”

wp@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