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다고 말도 못해…물량 뺄까 채권 회수할까 조마조마”

줄도산 위기 처한 협력사 표정

직접고용 규모 39만…160만명 생계 달려 부품사, 긴급자금 3조 1000억 지원 요청

“다들 어렵지요. 어려운데 어디 가서 말도 못해요. 2차, 3차 협력사가 1차 협력사나 원청에 가서 상황이 어렵다고 하면 기존에 나오던 물량도 빼고 다른 곳에 줘 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은행 가서도 추가 대출을 받기 위해 상황을 설명하고 싶지만 외려 채권을 회수할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고문수 자동차산업협동조합 상근이사)

한국 경제의 허리를 책임지는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자동차 산업 불황에 1차 협력사들이 줄줄이 부도났다. 상황이 열악한 2차·3차 협력사들의 줄도산 우려가 커진다. 부품업체들은 3조원 규모의 긴급자금 수혈이 필요하다는 뜻을 정부에 전달했다.

경남 창원의 현대자동차 2차 납품업체 이모 대표는 산업단지 분위기에 대해 “상남동 일대가 번화가인데 유동인구 자체가 확 줄었다”고 했다. 이 대표는 “비공식적으로 단지 내에서 회사 30%가 매물로 나와 있다고 한다. 공장 부지도 매물로 많이 나와 있는데 매매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경남 거제 조선업 쪽이 대출 규제 종목으로 은행권에서 걸려 있었는데 이것이 자동차산업으로 넘어온다고 해서 다들 조마조마한 상황”이라고도 했다.

인천 부평의 연 매출 1000억원 대의 한국GM 협력사 김모 대표는 “상반기 매출이 반토막났고, 900명의 직원 중 30%를 감원했다”고 말했다.

인천 부평과 전북 군산에서 공장을 운영했는데 한국GM이 군산 공장을 지난 2월 폐쇄하면서 같이 군산 공장을 닫았다.

김 대표는 “주변에서 보면 산업훈장, 수출의 탑 같은 것을 탔던 건실한 업체들도 하루 아침에 파산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로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자동차 1차 협력 부품업체 89개사 중 42개사가 영업적자로 ‘빨간불’을 기록했다. 28개사(66.7%)는 적자로 전환했다. 89개사의 매출액은 작년 동기 대비 8.6% 줄고, 영업이익률은 0.9%에 그쳤다.

지난 6월 현대차 1차 협력업체 리한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데 이어 다이나맥, 금문산업, 이원솔루션 등이 잇따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돌입했다. 고무부품을 공급하는 2차 협력사 에나인더스트리는 지난 7월 만기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 처리됐다.

문제는 자동차 산업이 흔들리면 한국 경제 자체가 휘청거린다는 점이다.

자동차 산업의 직접 고용 규모는 39만명이다. 조선업(12만8000명)의 3배에 이른다. 4인 가구를 기준으로 잡으면 160만명의 생계가 달린 문제다. 주유·운송·정비·판매·생산자재 등 전·후방 산업 고용까지 고려하면 그 여파는 더욱 커진다.

이에 자동차 부품회사들이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자동차산업협동조합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에 3조1000억원 가량의 긴급 자금이 필요하다는 자체 설문 결과를 전달했다.

자동차 부품업계 관계자는 “긴급하게 수혈이 필요한 회사는 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만기가 도래한 채권의 경우 연기를 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긴급 자금 지원이 단기 해법이라면 중·장기적으로 자동차 부품사들의 구조조정의 필요성도 높아진다.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부품업체가 여러 곳이 있는 경우 부채 비율을 고려해 인수·합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문수 자동차산업협동조합 상근이사는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자발적인 M&A가 이뤄져야 한다는 필요성은 다들 공감하는데 회사별로 상황이 다르다보니 어디 하나 나서기 쉽지 않다”며 “원청이나 1차 벤더에서 말하기도 쉽지 않고, 정부가 나서기는 더욱 힘들 것 같아 다들 고민이 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장기적으로는 납품업체 다변화와 수출경쟁력 강화에 나서야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미래를 위한 연구 개발에 투자하기도 쉽지 않다.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부 부품사는 경쟁력을 키워 수출 다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대다수 2~3차 부품사들은 자생력이 없다”며 “수출 경쟁력을 키워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