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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이성일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원장] 혁신성장의 초석, 뿌리산업
초석은 기둥 밑에 놓는 돌이다. 건축물의 무게를 지탱하고 습기와 풍화로부터 기둥을 보호한다. 

예로부터 건물을 지을 때 초석을 두는 기초공사가 끝나면 정초식을 행해 성공적인 건축을 염원했다. 독립신문 기록에 따르면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건립 정초식 때는 내외 국민 육천여명이 운집했다고 한다. 유럽에서도 중세 교회건축 정초식 때는 교황이 반드시 참여할 정도였다. 비단 건축물뿐만 아니다. 포항제철에서는 고로(용광로)를 신설할 때면 연와정초식을 개최해 내화벽돌을 쌓는 시작을 알리고 고로의 성공적 가동을 기원하고 있다. 건축에서든 산업에서든 그 기초인 초석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미래를 선점하기 위한 혁신형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전기·자율차, 에너지신산업, 바이오·헬스, IOT 가전, 차세대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혁신 산업의 성장을 초석처럼 지탱하는 것이 바로 뿌리기술이다. 전기·자율차 경량화 부품은 마모를 최소화하는 표면처리 기술과 연계 열처리를 통해 안정성과 고연비 효율성을 갖추게 된다. 쉐일가스 에너지 채굴에 쓰이는 가스관 연결부품 역시 높은 압력을 견디기 위해서는 엄격한 인증을 통과한 주물소재가 필수적이다.

고속성장하는 바이오 헬스 제품도 금형설계와 소성가공을 통해야만 세상에 나올 수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IOT 가전에 들어가는 전기회로 기판은 도금처리와 정밀한 용접·접합기술을 거쳐야 첨단 기능이 발휘된다.

이러한 뿌리산업에 최근 감당해야 할 무게가 더해지는 모양새다. 고성장을 뒷받침한 주력산업이 경기침체로 주춤하자 협력구조에 있는 뿌리산업 역시 동반정체의 한계에 부딪혔다. 오랜 시간 체화돼야 하는 공정기술임에도 청년인력 기피현상과 기술 인력의 고령화로 기술 전승에 어려움을 겪는 뿌리기업들이 많다. 공정에서 발생되는 환경문제 역시 풀어야할 숙제다.

다행히 해법을 찾아내는 뿌리기업도 있다.

올해 뿌리기업 명가로 선정된 삼창주철공업(주)은 매출액 대비 직접수출 비중이 76.5%나 된다. 중단 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일찍이 수출주도 기업으로 탈바꿈한 결과이다. 기업부설연구소 중심으로 소방밸브, 유전 채굴제품 등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고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유럽, 미국의 엄격한 인증을 통과해 해외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일하기 좋은 뿌리기업인 (주)영광YKMC는 청년들이 기피하는 도금 업종임에도 불구하고 공정 자동화·친환경화 및 직원복지 투자를 통해 20~30대 청년인력이 종사자의 80%나 된다. 뿌리산업의 혁신 방향을 말해주는 사례들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경우 제조혁신추진단을 신설하고 중소ㆍ중견기업 생산현장에 4차 산업혁명 대응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P-ICT’ 사업을 추진 중이다. 여기서 P(Prognostics)는 ‘예상’, ‘예측’이란 뜻의 영단어 첫 글자에서 따왔지만 ‘뿌리(PPURI)’라는 중의적 의미로도 쓰일 수 있다. 뿌리산업의 대표적 업종에 AI, 머신러닝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핵심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공정혁신 노력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제조업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고, 향후 다른 분야에 확산할 수 있는 개방형 혁신 플랫폼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신라 진흥왕 때 건축된 황룡사탑은 9층 높이의 목조탑이었다. 불타 없어진 후 그 크기를 가늠할 방법은 초석의 크기와 배열이 유일했다. 불국사도 화마를 비켜가지 못 했지만 남은 초석을 기반삼아 천년 고찰로 다시 설 수 있었다.

뿌리산업은 산업의 크기와 방향을 정하고 새로운 산업 성장에 기반이 되는 초석과 같다. 혁신성장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 먼저 뿌리산업의 성장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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