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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가 섬이라면…섬은 알고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바다, 욕지도
여행은 풍광보다 맛으로 기억된다. 욕지도의 1박2일 여행은 그저 맛보기 수준이다. 하지만 어디서도 맛보기 힘든 쫄깃한 고등어회와 당도 높은 고구마의 맛, 그리고 달콤한 해풍의 맛은 두고두고 입안에서 감돈다.
서쪽은 해수욕장, 남쪽은 깎아지른 절벽
‘태평양 언덕’ 아래엔 랜드마크 펠리칸 바위
고등어회 부산·제주와 달리 쫄깃한 식감
깔수록 더 알고싶은 양파 같은 섬…


무욕의 마음으로 섬을 찾았는데, 욕지도에 가니 희한하게도 욕심이 더 난다.

비단, 달콤한 고구마, 쫄깃한 고등어회로 인해 생긴 식욕 만이 아니다.

깔수록 양파 같이 감춰진 매력을 드러내는 이 섬을 더 알아봐야겠다는 마음이 견물생심 솟아난다. 이미 170년전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알고자 하는 열정(欲知:욕지)이 가득한 섬’이라고 글로 남겼고, 그 이전부터 ‘욕지(欲知) 본능’이 충만했을 것이다.

▶거북이, 사슴, 그리고 펠리칸
=하늘서 본 형세는 거북이가 동쪽으로 헤엄쳐 가는 모습을 닮았지만, 과거 사슴이 많이 살아 녹도(鹿島)라고 불렀고, 정작 이곳 명물은 긴 부리 펠리칸 바위라는 점이 흥미로워 궁금증이 도진다.

욕지도는 남쪽이 높고, 북쪽이 야트막하다. 태평양쪽 거센 파도로 남쪽은 천인단애이고, 서쪽은 포구와 해수욕장, 해안절벽이 번갈아 나타나며, 북쪽은 선착장, 마을이 자리잡았다. 동서남북 각기 고도와 지형이 다르고, 거북이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일출봉, 망대봉의 형세와 식생은 천연기념물 군락지 등 색다른 건강미를 자랑한다.

해뜰 무렵 통단해변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사자섬, 외초도, 내초도 사이를 비집고 기어이 모습을 드러내는 태양은 정열적인데, 북서쪽 도동해수욕장, 대송 솔구지 전망대 등에서 보여지는 석양은 얼마남지 않은 빛을 여수와 남해, 통영, 거제에 골고루 나눠주며 차분하게 내려앉아 대조적이다. 서로를 더 알아가고픈 썸남썸녀의 마음 같은 섬이다.

▶나바로 요새 혹은 크레이트 오션=욕지도 여행은 ‘태평양 언덕’에서 시작된다. 남으로는 태평양이, 북으론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동시에 감상하는 이 언덕 바로 아래엔 욕지도의 랜드마크 펠리칸바위와 출렁다리, 해안절벽 트레킹 코스 ‘비렁길’이 있다. 비렁길의 백미는 펠리칸 바위 동쪽끝에서 펼쳐진 해식애와 섬의 풍경이다. 영국 나바로 요새 혹은 호주의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닮았고, 연평도의 병풍 바위와도 흡사하다.

펠리칸바위에서 동편 촛대바위일대 까지 해안절벽 곳곳은 강력한 태평양 파도를 이겨내느라 주상절리가 떨어져 나간 듯한 흔적도 보이고, 수면아래 튼튼한 하체 덕분에 수면 윗쪽이 새의 부리처럼 비스듬하게 해식(海蝕)된 모습도 교차한다. 웬만한 해안 곶들이 거북이 모양인데, 욕지도 돌출 바위 아랫부분이 새 부리 처럼 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출렁다리
▶태평양 언덕의 ‘서므로’ 고구마 테마
=출렁다리 입구, 즉 태평양 언덕엔 전국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욕지도 고구마 테마의 카페 ‘서므로’가 있다. 지금은 쉰이 넘은 김해 청년이 부산 미녀를 꼬드겨 좌 태평양, 우 해상국립공원이 보이는 이 지점에 카페를 차렸다.

18세기 유입된 고구마는 욕지도에서 가장 당도높은 모습으로 거듭난다. 해풍을 맞으며, 낮엔 따사로운 직사광선으로 양분을 만들고 밤엔 차가운 땅 속에서 영양분과 당분을 농축해 최고의 맛을 내는 것이다. 이곳 처녀는 시집갈 때까지 쌀 서말도 못 먹는다고 한다. 달콤하고 다이어트와 피부미용에 좋은 고구마를 먹느라 그렇다는 것이다.

‘서므로’ 김민경-조경래 부부는 최근 ‘욕지고메원도넛’과 ‘고구마 라떼’를 내놓았다. ‘고메’는 고구마의 경상도 사투리이자 프랑스어로 ‘맛’을 뜻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강한 기초체력을 요하는 우주인들의 식량으로 정한 고구마가 욕지도 천혜의 식생을 만나더니, 이젠 달콤한 건강음식으로 확장된 것이다. 통영시는 욕지도 고구마로 ‘빼때기죽’, ‘고구마 쫀득이’ 상품도 내놓았다.

고등어회
▶배틀트립, 양성평등 서촌식당의 인심
=통영 총각의 손에 이끌려 욕지도에 시집온 서촌식당 안주인 박승연씨는 고향인 서울 사람을 만나자 반가움에 찐고구마를 내온다. 여행예능 ‘배틀트립’에서 김승수-박정철이 먹방 브로맨스를 시연하던 노랑 빌딩의 서촌식당은 여사장 박승연, 남사장 강종필씨 부부 명함을 따로 파서, 두 장을 한꺼번에 건네는 양성평등 식당이다.

이 집 고등어회는 부드러운 육질의 부산, 제주, 동해의 그것과는 달리 쫄깃하고 고소하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 육지로 건지자 마자 소금을 뿌리고 모종의 비법을 쓰는데,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욕지도 사람들은 고등어의 직진 성향을 감안해 바다 한폭판에 올림픽 마크 처럼 원형가두리를 큼지막하게 설치한다. 각진 가두리였다면 머리를 꽤 다쳤을 것이다. 고등어 건강 유지법 중 하나이다.

▶영화 ‘화려한 외출’ 배경지, 삼여 바위=펠리칸 바위에서 다시 태평양 언덕으로 돌아와 일주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7~8분만 가면 1977년 윤정희-이대근의 영화 ‘화려한 외출’ 배경지, 용왕님 세 딸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담긴 삼여 바위를 만난다. 일주도로 24㎞ 구간의 드라이브는 높낮이가 파란만장하다. 곳곳엔 산악자전거, 섬 마라톤을 즐기는 곳이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북서쪽 솔구지 언덕에 서면, 모도, 노대도, 거치리도, 봉도, 사이도, 막도 등 보석같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한눈에 펼쳐진다.

▶천왕봉 모노레일 12월 완성=욕지도의 투톱인 천왕봉과 대기봉에 올라야 제맛이다. 부두에서 남서쪽 언덕 1㎞만 가면 목넘이 삼거리를 만나는데, 여기 우회전해 언덕길을 따라 천왕봉(392m) 중턱, 해발 100m 지점에만 도달하면 해안 경치가 한눈에 펼쳐진다. 펠리칸바위가 긴부리를 내밀고 목을 휘어감아 북으로 돌린 거북이 머리(일출봉, 통단)의 모습이 역동적이다. 정상은 혼곡과 대기봉을 거쳐 도달한다. 조금 먼 ‘마당바위-대기봉-황능선-천왕산-약과봉-태고앞’ 코스를 휘휘 도는데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두 달 뒤면 천왕봉 정상까지 오르는 모노레일이 완공된다. 노약자가 발품 들이지 않고 35분동안 태평양과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된다.

▶이중섭이 그린 천연기념물 동산=욕지도의 거북이 머리 부분 동항리에는 천연기념물 343호 모밀잣밤나무 군락지가 있다. 강가나 바닷가에 숲이 있으면 수중미생물이 많아지고 그늘이 생기므로 물고기가 모여 서식한다는 점을 욕지도 어민들은 잘 알고 있었고, 아주 오래전부터 이 숲을 신성시하며 보호했다. 소(牛)의 화가 이중섭은 욕지도에서 이 숲을 그렸다. 숲에는 팔손이, 보리수, 사스레피, 생달나무, 모람, 자금우, 해변싸리, 애기등, 민땅비싸리 등 희귀종이 많다.

본섬의 동쪽 연화도는 사방이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욕지도의 축소판이다. 통영8경의 하나인 이곳 풍경은 산기슭 코스모스와 어우러지면서 더욱 아름답다. 연화도에서 반하도(무인도)를 거쳐 몽돌해변 파도소리가 가슴 사무치는 우도로 가려면 국내 최장(309m) 보도교를 거치면 된다. 4분의3은 샌프란시스코식 현수교로, 나머지는 서울의 성산대교식 트러스구조라서 흥미롭다.

▶때론 섬세하게, 때론 강인하게=1만년전부터 인간과 공생하던 곳. 고대~중세 동아시아 상인이 교류하던 곳, 파시 성황때 인구 1만명이었던 곳. 신혼부부의 천국 몰디브 무푸쉬의 마카나를 닮았지만 강인함이 풍기는 가마우지의 고향.

때론 장쾌하고, 때론 부드러우며 한기와 열정이 교차하는 욕지도 1박2일 여행은 잰걸음으로 꽉꽉 채워도 짧았다. 욕지+156섬, 그곳이 더 알고싶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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