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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조선시대 법조 비리
‘무뢰배가 재판정 주변에서 사람을 부추겨 송사를 일으키고 글 재주를 부려 법을 우롱하며, 옳고 그름을 뒤바꾸고 어지럽게 한다. 쟁송이 빈번해지는 것이 이 무리 때문이니, 마땅히 엄단해 간교하고 거짓된 짓을 못하게 하라.’

1477년 8월 15일(음력) 조선 성종은 이같은 법조 비리 엄단 교지를 내린다. 당시 ‘재조(在曹)’엔 사헌부, 의금부, 포도청 관원, 지방 현감 등이, ‘재야’에는 민간인 신분인 ‘외지부(外知部)’가 있었다.

요즘 처럼 법조인 자격시험이 있는 때가 아니라서, 재조 법조인들은 3권을 통합하는 관리임용제도에 의해 뽑힌 사람들이고, ‘외지부’는 지식을 송사의 도구로 쓰는 법률 정보 거간꾼이었다. 한국고전번역원에 따르면, 소송을 부추기고, 죄를 더하거나 줄이며, 타인을 무고하는 등 빗나간 방법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법조 비리가 발생하면 한국이든 중국이든 엄벌에 처했다.

중국 ‘대명률’은 피고인인 의뢰인의 죄값과 같은 형량을 법조비리꾼에게 부과했다. 조선 ‘속대전’은 법조비리범에게 장(杖) 100대를 치고 3000리 밖으로 유배토록 했다.

성종의 법비(法匪) 근절책에도 불구하고 외지부는 이후에도 되살아나 권력과 결탁했다. 중종실록은 ‘경명군 이침(성종의 아들)은 외지부를 끌어다 자기 집에 모아 놓고 송사하기를 좋아하니, 심히 좋은 일이 못된다’, ‘이호원(태종의 증손)은 비리로 송사하기를 좋아하여 외지부 노릇을 한다’는 등 내용이 적혀있다.

과거 정권 ‘사법농단’ 사태에서 보듯, 권력과 법비가 결탁해 빚어내는 망국적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2018 국정감사에서 법조비리가 다시 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특히 금품수수형 법조비리는 4년만에 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법조 비리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도덕성을 뒤집어 미래를 어둡게 하기 때문에 반드시 발본색원해야 한다. 

함영훈 선임기자/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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