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디지털 성범죄 아웃②]음란물 대신 ‘디지털 성범죄’로 말해주세요…여전한 가해자 중심주의

-불법촬영물이 성적 욕망 충족시키는 ‘음란물’, ‘포르노’로 불러선 안돼

-“옷을 야하게 입었으니 당할 만하다” 피해자 탓하는 시선, 또 다른 범죄 일으켜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전문가들은 현행법이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음란물’ 등기존의 단어 역시 사건의 심각함을 대변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피해자가 야한 옷을 입었으니 당할 만하다”혹은 “당신이 동의해서 찍은 게 아니겠느냐”라는 식의 피해자를 탓하는 분위기 역시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불법촬영물을 가리키는 용어로는 ‘음란물’, ’리벤지 포르노’ 등이 혼재됐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단어들은 가해자 중심적이고 범죄 행위를 축소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를 들어 음란물의 사전적 정의는 ‘성욕을 흥분 또는 자극하거나 정상적인 성 윤리를 해치는 영화, 도서, 사진, 비디오, 만화 등’이다. 이에 대해 하예나 디지털 성범죄 아웃 대표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음란물’이라는 단어는 상대가 나를 자극하고 흥분케 하는, 유혹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불법촬영물 피해자 가해자를 유혹한 게 아니다. 피해자는 그냥 ‘존재했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불법촬영과 유포라는 범죄의 ‘피해자’가 사람을 유혹하고 흥분케 하는 음란물 ‘출연자’로 불려선 안 된다는 의미다.

리벤지 포르노 역시 마찬가지다. 리벤지 포르노는 헤어진 연인에게 보복할 목적으로 사귈 당시 촬영한 성적인 사진이나 영상을 유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포르노의 어원은 그리스어 포르노그래포스(pornographos)로 ‘창녀에 관해 쓰여진 것’을 뜻한다. 리벤지 포르노라는 말 자체에도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최근 디지털 성범죄라는 단어가 생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누군가의 신체를 몰래 찍거나, 동의 하에 찍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유포하는 행위가 명백한 ‘범죄’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용어의 변화뿐만 아니라 가해자 중심적인 인식 또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피해자들은 성폭력 가해자 말고도, 자신을 탓하는 수많은 시선과도 싸우고 있다. 피해자가 “짧은 치마를 입었기 때문에”, “남자친구가 촬영하자고 했을 때 동의했기 때문에” 피해자가 될 만 하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는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불법촬영을 당할까봐 남성들은 옷차림을 점검하고 다니지 않으며, 애인관계에서도 남성들은 자신을 촬영한 영상이 유포될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서 “디지털 성범죄로 인해 여성들은 자신을 검열하는 상황에서, 모든 여성들이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say@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