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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지방분권, 대통령이 챙겨야 할 때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가 지방분권이다. 문 대통령은 여러 차례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대통령직속 자치분권위원회도 구성했다. 올 3월 청와대가 발표한 개헌안에도 지방분권형 국가를 천명함으로써 지방분권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번에는 제대로 지방분권이 이루어질 수 있을거란 기대를 낳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지난 24일 최종 확정된 ‘지방분권종합계획안’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종합계획에는 총 5개 분야 32개 과제가 담겨 있는데, 도대체 구체적인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다. 추진방향만 있고 목표는 없다. 가장 많이 보이는 단어가 ‘강화’와 ‘개선’, 그리고 ‘조정’과 ‘검토’다. 행정부의 전형적인 시간끌기용 표현들이다.

주민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주민소환제도에 대해서는 “자치단체의 인구 등 규모에 따라 청구요건(서명인수) 및 개표요건 차등화 또는 하향 등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는 말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조정하겠다는 의견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주민자치 또 다른 축인 주민투표에 대해서도 청구대상 확대의 검토와 청구 및 개표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방향만 담겨 있다.

가장 중요한 의제 가운데 하나인 재정분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을 현재 7대3에서 장기적으로 6대4대 개편한다는 것이, 지난해 9월 재정분권 국민대토론회에서 행안부가 제시한 대단히 보수적인 안이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빠졌다. 종합계획에는 ‘국세의 지방세 전환 확대’라는 제목만 남겨두고 구체적 사항은 자치분권위원회 재정분권 TF 논의를 거쳐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정순관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장도 여러 차례 강조했던 부분이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지표조차 제시하지 못한 것은 재정담당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자치의 중요한 부분인 지방의회의 인사권, 자치입법권, 자치조직권, 예산편성권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도 ‘자율성 확대’나 ‘강화 방안 마련’과 같은 애매한 표현이 넘쳐난다. 선언적 의미의 의지만 강조될 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은 발견하기 어렵다.

지방의회 숙원과제인 정책보좌인력 확충도 불확실하기는 매한가지다. 원래 자치분권위원회에서는 의원 정수 내에서 정책보좌관을 둘 것을 권고했지만, 종합계획에는 ‘정책지원 전문인력 확충 추진’으로 그쳤다. 서울시의회의 경우 의원 한 사람 당 3900억원의 예산을 심의하는데, 보좌인력은 한 명도 없다. 9명의 보좌진을 두는 국회의원과 비교해도 말도 안 되는 현실이다. 정책보좌관제의 신설은 단순히 전문인력 확충에 끝나지 않는다. 지방정치엘리트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일이며, 청년일자리 확대에도 기여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국민여론과 예산 타령으로 시간을 끌어왔던 게 행정안전부다.

문대통령이 강력한 지방분권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합계획이 이러하게 맥없이 작성된 것은 중앙부처 관료집단의 고질적인 저항과 사보타지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결국 대통령이 다잡고 갈 수 밖에 없다. 지방분권 국가를 만드는 것이 대통령 프로젝트인 이상 관료를 설득할 권한도 능력도 없는 자치분권위원회에 맡기는 것 자체가 구조적 한계였다. 이제부터라도 대통령이 챙겨야 한다. 직접 챙길 수 없다면, 중앙부처 관료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지방분권을 담당하는 청와대 비서진을 강화하고, 대통령을 대신해 지방분권을 총괄할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미국 행정부에서는 이런 사람을 ‘폴리시 짜르(policy czar)’라 부른다. 특정 정책이나 대통령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사람이다. 부처 장관일수도 있고, 백악관 수석비서일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위임한 권한을 갖고 해당 정책 전체를 총괄해서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이다. 대통령에게 모든 일을 직접 챙기라고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그럴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지방분권을 확실히 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를 찾아, 권한을 주고 일을 맡기는 것이다.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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