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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매크로와 조작된 여론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28일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드루킹’ 김동원 씨 일당이 댓글 141만개에 총 1억여건의 공감ㆍ비공감을 조작한 사실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8년 전 정치권에도 매크로는 존재했다. 지난 2010년 모 국회의원실 ‘대학생 정책단원’으로 활동하며 직접 보고 경험한 사실이다.

그 해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하려 했던 모 의원은 화려한 경력에 비해 낮은 인지도가 약점으로 꼽혔다.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그를 알아보는 이들은 더욱 드물었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자동 입력 반복 프로그램인 ‘매크로’가 동원됐다.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 한켠에는 수십 대의 컴퓨터가 설치됐다. 각 컴퓨터에 깔린 매크로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의원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검색했다. 그 결과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해당 의원의 이름이 때때로 등장했고, 동명이인인 연예인에 가려 보이지 않던 인물정보도 가장 먼저 나타났다.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전날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드루킹’ 김동원 씨 일당이 2016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댓글 141만개에 총 9971만여건의 공감ㆍ비공감을 조작한 사실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또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댓글조작의 공범이라고 보고 불구속 기소했다.

특검에 따르면 드루킹 김 씨는 2016년 여름께 정당 선거 관계자로부터 2007년 대선 당시 댓글작성 기계 200대를 구입ㆍ운영해 큰 효과를 봤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댓글조작 프로그램 ‘킹크랩’을 개발하게 됐다고 한다. 특검은 드루킹 일당의 댓글조작 행위를 ‘정치 여론을 왜곡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드루킹 사건은 여론조작 유혹에 빠진 우리 사회의 민낯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댓글조작도 결국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조작ㆍ통제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8년 사이 거대포털 네이버의 영향력은 더욱 막강해졌고, 여론조작에 동원되는 매크로 프로그램은 더욱 정교해졌다. “댓글 몇 개를 조작했다고 여론이 바뀔까”라며 사안을 ‘침소봉대’해선 안 된다고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드루킹 사건만이 유일한 사례가 아니다. 8년 전 그 의원이 매크로를 사용해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려고 한 행위도 인위적인 여론조작을 노린 것이다. 이 밖에도 사이버 여론을 조작하려는 시도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 2009년부터 2012년 대선까지 민간인 댓글 부대 ‘사이버외곽팀’을 운영해 포털사이트 및 커뮤니티 댓글 여론조작을 했고, 2010년 군 기무사령부의 기획에 맞춰 사이버사령부는 수년에 걸쳐 댓글 활동을 했다. 모두 이명박 정부 차원에서 벌어진 일로 관련자들은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현재 수사 중인 사건도 있다. 경찰은 이명박 정부 시절 경찰의 ‘댓글 공작’ 의혹을 자체 조사 중이다. 당시 경찰은 정보과 직원 100여명 등을 동원해 정부를 옹호하는 댓글활동을 벌인 의혹을 받고 있다. 이 밖에 자유한국당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 2006년부터 각종 선거에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여론을 조작한 사건도 수사 중이다.

물론 사건 유형과 경중을 놓고 봤을 때 공권력이 동원된 댓글조작 사건의 심각성은 드루킹 사건과는 차원이 다르다. 훨씬 엄중히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그렇다고 열혈 정당 지지자들로부터 시작된 댓글조작 범행을 가볍다고 치부해 버려서도 곤란하다. 누구에게나 ‘대세를 따르는 심리’는 존재한다. 줄이 길게 서 있는 식당을 보고 쉽게 ‘맛집’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장조사기업 엠브레인이 올해 3월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문화와 관련해 설문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자의 2명 중 1명(48.5%)이 댓글을 보고 자신의 의견이 맞는지 고민하거나 생각을 바꾼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불행히도 한국에서 ‘댓글’은 정치화된 용어가 됐다. 여론조작 유혹이 낳은 비극이다. 정치와 댓글조작 문화를 분리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정치인들이 직접 해야 한다. 여전히 현역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인 의원에게 묻고 싶다. “매크로, 아직 사용하고 계신가요?” 

kwat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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