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유명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이라는 장편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1200만부 이상, 우리나라에서도 100만부 넘게 팔린 인기소설이다. 일본 조그마한 지방 도시의 ‘나미야 잡화점’ 주인이 우연한 기회에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을 해주는 일을 하게 되면서 생기는 사연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미야 잡화점 주인은 어려운 고비에 부닥친 사람들이 고민을 적은 편지를 써서 가게 우편함에 넣으면, 밤새 답장을 준비해서 우유 상자를 통해 다음날 편지 쓴 사람이 가져가게 하였다. 그러다가 자신으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준비한 답변이지만 과연 그 답장들이 상담자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아니면 오히려 불행한 결말을 가져왔는지 자신이 없어서, 결국 가게 문도 닫고 죽기 직전에 상담자들에게 자신의 답신이 인생에 도움이 되었는지 기탄없는 의견을 보내달라고 부탁하면서 여러 사연들이 펼쳐지게 된다.

사실 보잘 것 없는 잡화점의 주인에게 고민을 상담했던 사람들은 커다란 지혜를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가 어떤 답장을 보냈든 마지막 결단을 내린 것은 상담자 자신이므로, 설령 그의 답변이 불행한 결과를 낳았다 해도 잡화점 주인이 책임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잡화점 주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가 다른 사람 인생의 전기(轉機)에서 어떤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는데, 그에 대해서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나 의견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해를 끼치지 않았으면 하는 선한 마음이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정치인일 것이다. 히틀러나 스탈린처럼 국민을 전쟁 속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고, 아르헨티나의 페론이나 필리핀의 마르코스처럼 잘 나가던 국가 경제를 파탄으로 내몰아 일반 국민들의 삶을 매우 곤궁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들이 나미야 잡화점 주인처럼 최소한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 혹은 자신들의 판단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겸손함을 가지고 있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설령 집권 중에는 그 결과를 알 수 없어 잘못된 정책을 끝까지 고집했을 수 있으나, 그 결과가 확연히 드러난 후에는 석고대죄하거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합당한 처사일 것이다. 그러나 역대 정치인들 중에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뉘우친 사람은 거의 없고, 오히려 끝까지 견강부회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려고 시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인들뿐 아니라 그러한 정책을 입안하고 권력자가 채택하도록 설득한 학자들이나 관료들도 이러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현실을 모르고 정책을 제안했든 잘못된 가정과 논리로 틀린 주장을 폈든 전문가로서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 주변에 있는 학자나 관료들 또한 정치인 못지않게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는데 매우 인색한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정치권에 들어가면서 학자와 관료들에게 필수적인 덕목인 ‘객관적인 평가’와 자신의 소신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조차 버린 사람들이 많다. 이들을 과연 양심있는 학자나 능력있는 관료로 인정해야 하나?

요즘 우리나라의 일자리나 실업률 등 경제지표가 나빠지면서 소득주도 성장론이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에 대해서 여러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들이 많은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 정책들을 입안하고 밀어붙인 학자나 관료, 정치인들은 지금 그 정책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하고 자신의 소신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있을까. 언론 보도를 보면 그런 것 같지 않다.

정책입안자들은 항상 그 ‘의도’만이 아니라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자신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쓴 답장이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 고민했던 나미야 잡화점 주인과 같은 책임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자신의 소신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과 타인의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들이겠다는 겸손, 그것이 학문의 건전한 발전을 담보하고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적인 요소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